진료실 단상들

MIND-BODY IV

夢乭 2014. 10. 5. 22:43

꽃으로라도 때리지 마라

 

어떤 여자 탈렌트가 쓴 글의 타이틀이다

읽어보지 않아 내용은 모른다

소개글로는 어려운 나라의 어린이들을 돌보며 느낀 감정으로 쓴 글이란다

난 상상해 본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전쟁은 반복되고

꽃은 이슬도 머금기전에 먼저 짓밟히다 말라간다

그 틈바구니에 독물을 머금은 꽃은 독초가 되어 자라고

어느틈에 손에는 총을 들고 세상을 겨눈다

발아래는 벌써 꽃이 밟혀있다

누가 꽃자루에 가시를 박았는가?

누가 꽃잎에 피를 묻히는가?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으니 내 책임은 아니라고 할 것인가?

그럼 그 세상은 무엇인가?

내가 없는 네가 없는 세상은 어디에 있는가?

이 세상은 내와 네 세상이 아닌가?

그럼 이 꽃들의 보금자리는 이 세상이 아닌가?

결국 천국뿐인가?

그래서 세상물정을 모를 때 세상 때를 묻히지 않았을 때 천국으로 가는 걸까?

아귀같은 세상은 독초만 살리려는가?

이제 나와 너는 독초만 보고 꽃이라 즐기고 있는 건가?

 

작년까지만 해도 그렇게 보지 못했었다

문진표를 보니 애들이 많이 아프다

학교가기 싫어요

우울해요

미칠것 같아요

자살하고 싶어요

......

중학생이고 사춘기니 장난삼아 객기로 문진표에 첵크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이 온 부모가 작성한 것이 아니고

혼자온 아이거나 친구와 왔거나

부모와 같이 왔더라도 본인이 혼자 작성한 문진표는 표시가 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런데 말을 어떻게 할 줄 모른다

참...문진표 만든 사람....머리 좋네

전체적으로 읽어 보면 신체적 문제나 정신적 문제를 구별할 수 있게

교묘하게 엮어 놓았다

초등학교 1 학년과 4 학년의 문진표는 부모가 작성했으므로

문진표만 본다면 아무른 문제가 없다

과거 병력빼고는 모범답이다

문진표에 모범답이 있을리 없겠지만 읽어보면 완벽한 착하고 건강한 학생이다

우수개지만 그런 문진표에 빵점이 나온다

웬 빵점?

문진표를 작성한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본다

문진표를 잘 보고 작성하셔야지....여길 읽어 보세요

아래 항목을 읽고 해당돼는 ......  'ν' 표시를 하세요

그런데 여기 모두 '0' 표시를 하였으니 다 틀렸지요

얘 너 숙제 엄마하고 하지마 엄마가 대신하면 다 틀려

옆에 같이 온 다른 아이의 엄마가 가지고 있던 문진표를 다시 확인하더니

급하게 돌아서서 고치고 있다

엄마 둘이 친구란다

ㅎㅎㅎ 유유상종이 이때 쓰는 말이구나ㅎㅎㅎ

 

초등생 검진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자 중학생들이 몰려 온다

마감날이 다되어 밀린 숙제하듯이 몰아서 하는 것 같다

내과가 하루 종일 바빠서 중간에 학생검진이 몰리면

정형외과나 통증과 외래까지 학생들을 보내는 것이다

그중 내가 한가하니 좀 많이 학생들을 보는 편이다

 

 

I

 

얄개같은 놈이 실없이 생글그리며 앞에 앉는다

너 왜그렇게 기분이 좋냐?

그냥요

옆에 같이 들어온 애들이 자기네끼리 떠드느라 소란스럽다

친구들하고 몰려다니니 좋으니?

매일 어울려 다니는데 뭐가 그렇게 좋냐?

중학교 올라와서 사귄 친구들이예요

초등학교때 친구가 없었어요

갑자기 내가 어두워졌다

그리고 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초등학교때 '따'였어?

여전히 생글그리며 대답한다.....예

지금은?

'따' 아녜요 친구들과 잘 지내요 재밋어요

그래 공부가 대수냐....친구가 최고지...니에게는

'특이 사항없음'이라 적고 검진을 마친다

어릴때 아토피를 앓았던 것이 무슨 문젠가?

탈장 수술한 것을 정확히 알아야 될 이유가 뭔가?

이렇게 마음이 아팠던 것을 학생부에 기록도 못하고

검진 때 의사가 문진표로 두들겨 잡아내야 하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문진표가 모범이라 특별한 말없이 끝난다

하지만 말로 못하고 문진표에 잔뜩 표시한 애들이 있다

한두번씩 고치고 다시 고치고....별거 아닌 물음에 고민하며 표시를 한 것이다

'학교가기 싫어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런 학생이 올해는 많이 보인다

작년에는 내가 무관심하게 검진을 했었나?

 

 

 

II

 

이제 여학생을 보자

역시 문진표가 말한다 '가슴이 답답해요'....

마음이 아프단다

난 일어나 진료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마주 앉아 학생에게 묻는다

너 학교가기 싫으니?

아뇨

??? 의외다

공부는 잘 하냐?

중간이상요

신체를 보니 중1이 이미 처녀티가 난다

하긴 요즘 초등4학년만 되어도 가슴이 봉긋한 애도 있으니

그런데 뭐가 그리 맘이 아프냐?

뭐가요?

문진표를 보니 그렇게 보이네...

그기에 그런 말 없쟎아요

내가 문진표 해석을 그렇게 했단다...내가 의사쟎아

.......

갑자기 울듯하다 눈물마저 글썽인다

친구들이 날 '따'해요

저런, 나쁜 친구들 같으니....

그런 친구들 안 보면 되쟎아? 뭐가 아쉬워?

사실은 제가 먼저 잘 못했어요 내가 나빴어요

내가 잘 못했다고 말했는데도 애들은 계속 날 '따'시켜요

그런데 제일 친한 친구도 이제 날 괴롭혀요

......

갑작스런 학생 생활상담이 부담스럽다....검진은 이런 것이 아니쟎아...

이 아이는 친한 친구와의 관계단절이 가장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친한 친구니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좀 해보지 그래?

해봤는데요 .... 여전해요

진정으로 널 받아 달라고

니 마음을 다 열고

있는 그대로

감정 그대로

친구에게 얘기 한 거니?

넌 친구에게 니 마음 얘기 안하고

친구가 너에게 마음을 열기를 바라는 거 아닐까?

먼저 니가 마음을 열어봐

.......

....?....

안해본거 같아요....해 볼께요

그래 잘 될거야

결과란에 '특이 사항없음'이라 적으며 끝낸다

 

 

 

III

 

앞에 호리하고 하얀 얼굴의 남학생이 있다

눈이 남다르다

눈이 흔들린다 그래도 피하지 않는다

문진표도 미묘하다...막연히 물어본다

아픈데 없지?

없어요

넌 초등학교 친구 많으니?

아뇨 없어요

중학교 친구들은?

많이 없지만 친한 친구는 있어요

다행이구나... 초등학교때 없던 친구가 이제 생기다니

.......

초등학교때 뭔일 있었나?

......

힘든 일이 있었구나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뭐 공부야 내 알바 아니고

청진이나 신체발육상 특이 소견 없으니

'특이 소견없음'이라고 적어도 되겠네

자... 여기 봐라

내가 결과란에 특이사항없다고 적었지?

학교에 이렇게 보낼거야 됐지?

......

.....?.....

초등학교때 따돌림받았어요

고개를 떨군다

소아정신과 다닌후 많이 좋아졌어요

지금도 다니고 있니?

고개를 끄뜩인다

잘하고 있네....걱정마라 잘 될거야

친구도 생겼쟎아?

지금은 행복하냐?

대답이 주저없이 빠르다

그래 잘 될거야

잘가라

 

 

 

IV

 

남학생의 엄마는 옆에 서있다

엄마는 애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곁눈질로 한번씩 애를 보는 얼굴은

한심해하고 실망에 찬 표정이 역력하다

학생은 의자에 앉아 있는데

얼굴이 없다

앉은 내가 볼수 있는 것은

모자뿐이다

모자챙이 약간 고개숙인 채 있는 얼굴을 다 덮었다

얼굴함 보자

......

고개를 들자 미끈하게 잘 생긴 얼굴이 나온다

하지만 표정은 알기 힘들 정도로 그야말로 무표정이다

눈은 내리 깔았다

나도 그냥 문진표도 보지 않고 청진이나 하고

목안을 건성으로 본다

간단한 검진이다 여기에 문진표만 보면 된다

얼마나 간단한 검진인가?

결과란에 '특이사항없음'을 적는다

그리고 한마디 한다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

너를 괴롭히는 것이 뭔지 넌 알고 있을 거야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순 없다

널 괴롭히는 뭔가를 모자로 가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널 괴롭히는 것이 친구가 됐던 세상의 그 누구든

당당히 맞서라

그리고 말해라

'그래 세상아 내 눈을 찔러라 피하지 않겠다

내 눈에서 피가 흘러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

 

 

 

 

.......................................

 

학생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학생들 스스로인가?

세상인가?

 

꽃을 찟밟은 것은

꽃인가?

세상인가?

 

세상에는 너와 나 둘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