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단상들

240903진료실의 세월

夢乭 2024. 9. 3. 12:13

지난 6 월에 파키슨 환자가 준 행운의 클로버.


전에 환자가 주고 간 행운의 클로버 잎새 액자가 며칠 전부터 눈에 자꾸 들어 온다. 항상 그 자리에 놓여 있어 특별히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건성으로 보고 지나쳤을까. 며칠 전부터 색바랜 잎사귀들이 마음에 거슬린다.
지난 차트를 열어 보았다. 통증 주사를 맞지 않아도 정형외과 외래를 통해 물리 치료를 계속하고 있을지 몰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진료 기록은 그때 내가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2 가지 이유가 있겠다.
하나는 증상이 해소되어 다음 통증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냥 일상 생활을 하는 경우이다.
두번째는 그 동안 치료에 만족하지 못해서 병원을 옮기는 경우이다.
어쨋던 시간이 지나면 통증 때문에 다시 방문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있기에 크게 마음 쓰지 않는다.
그런데, 노인 환자인 경우에는 좀 다르다. 종종 배우자나 보호자와 함께 다니던 노인 환자들은 세월이 흘러 가면서 진료실에서 볼 수 없게 되는데, 위 두가지  이유로 생각하기 어렵다.
지역 밀착형 의원들의 의사들은 거의 단골 환자가 대부분이라, 환자들과 같이 늙어 간다.
중년의 의사가 세월 따라 노의가 되지만, 환자들은 새로 유입되는 환자들로 다양한 연령층의 환자 구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개원 초기에 열정을 쏟아 부었던 그 세월은 쏜살같이 흐르고, 후일 웃년배 환자들과 옥신각신한 기억을 되새기면 세월의 무정함을 느끼곤 한다.
이제 그들은 그동안 뜸하게 오던 자주 오던 것과 상관없이 진료실 방문이 아예 없어진 것이다. 대신 간혹 지역 주민들이 오가며 알려주는 풍문으로 환자의 근황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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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당연히 의사도 비켜가질 않는다.
의사도 몸이 불편하거나 병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주위의 사람들은 의사도 아플 수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하질 않는다. 의사가 병들었다면 비웃는 사람들도 아마 있을 것이다.
나이든 의사는 청장년 때처럼 환자와 힘겨루기를 못 한다. 차츰 그 의원에서 의사와 기싸움을 하려는 환자는 세월에 따라 없어 진다.
수 십 년간 격었던 일이라 그런 환자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게 그 의원을 타의던 자의던 떠나게 되는 것이다.
환자 진료 외 다툼은 체력을 소모시켜 의사의 피로를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늙음은 세월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흘려 보낸다. 많은 환자들이 오간 공간을 한 자리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의사도 그동안 흘려 보냈던 환자들 처럼 세월에 떠내려 가 결국은 진료실에서 은퇴하기 마련이다.
요즘 내게는 억지부리는 환자들(소위 진상환자)이 없다. 몇 년 전에는 많았다. 그 환자들은 아마 다른 병원에서 억지를 부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환자들은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내가 다른 병의원으로 보냈을 것이다.
의사와 맞지 않는 환자는 의사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세월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경험적으로 그런 환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회피하게 된다. 단지 그들에게 맞는 젊고 투쟁적인 의사를 만나기를 바랄 뿐이다.
나이듬에 따라 생기는 나약함과 동시에 노회함은 피투성이로 싸우면서 흘려보낸 세월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