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물한 기억의 편린을 찾아서 I

夢乭 2014. 7. 24. 08:28

 

 

세월이 흘러도 마음은 자꾸 시간을 거슬러 간다

한창 일할 나이에는 노쇠함을 흘려 보았으나 이제 주위에서 나를 뒷방 취급한다

대접인지 세상살이의 팍팍함인지 아니면 내가 세상을 만만히 본 엄중한 경고나 보복인지

모두들 세상이 편안하다고 걱정은 있으나 근심은 없다고 농을 할 때

난 세상이 나에게는만 왜 이리 혹독하고 가차없나.... '가혹하다'라고 자책하곤

세상을 이기기 위해 눈물을 딱지않고 말려갔다

흐르는 남자의 눈물이 부끄러우면 차라리 흘리지 말자

걸림돌이 있으면 돌아가지않고 깨고 가리라

 

이제 돌아서서 걸어온 발자취를 보니

흐트러져있고 물이 고여 흔적을 찾을 수도 없거나

드문드문 핏자국도 엉덩이 붙였던 벤치옆에 말라 있다

방황은 길어보이나 돌아보니 그 길은 너무나 짧더라

앞을 보니 끝 모를 장막이 막고 서 있지만

이미 그 장막은 마지막 장면을 위해 이미 만들어진 무대를 살짝 가려 놓은 낙엽임을 알기에

아쉬운 맘에 가벼운 미풍 마져도 두려워 진다

 

홀로서 갈 길을 모를 때는 친구가 길동무가 되었고

같이 갈 친구가 있을 땐 즐거움이 가득했으나

하나둘 소식이 아련해지고

어쩌다 홀로 남겨진 객지에서 자다 신새벽에 눈을 뜨면

덩그러이 혼자 누운 채 눈가에 눈꼽마냥 얼룩이 묻어있다

 

딱지 않고 말린 눈물은 이제 더 이상 장쾌하지 않고

부끄럽고 그리움을 갈망함을 알겠다

 

더 늦기전에

어린 유년을 찾고

황금같았던 청년을 찾아

귀여워 해주고 자랑스러워하고 잘못을 용서빌기 위해

가상의 시간을 빌어 다시 길을 되짚어 가고자 한다

그 길에 국민학교 친구도 같이가고

꺼떡머리 총각도 간다

날 알던 모르던 잠시 스쳐간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이름도 모르지만 눈인사 정도는 하리라

 

어느듯 부산이 다가온다

차창에 비친 중년이 낮설어 신기해 사진을 찍어 본다

그 옆 귀퉁이에 우연히 찍힌 젊은 처자의 지쳐 잠든 모습이

마치 나와 동행하다 지쳐 늘부러져 있는 것처럼 보여 황급히 휴대폰 카메라를 끈다

 

부암동이란다 옛날 천일극장앞 새마을금고가 지키고 있는 곳

항상 그자리다 그 자리부터 시작이다

황급히 택시를 타고 부암동을 외친다

가는 길이 눈에 읶어도 풍경이 낮설다

기사님 봉생병원이 없어졌는교?

아임니더 고 뒤에 있씁니더

딱 벌어진 어깨는 희끗한 귀믿털이를 가볍게 만든다

아 이제 삼일 삼성 극장이 없어졌네...

우리 어릴 때 단체관람 많이 갔다 아임니꺼

기사가 기억을 더듬게 한다

그럼 가는 길에 있는 보림극장은요?

아 보림창고요 허허 우리는 보림창고라고 불렀지요

듣고보니 이 사내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기사분께서는 올 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제가 62년생인데요

저도 62년 범띠 아임니꺼 딸 하나 키우는데 이제 다 커서 난 이제 즐기고 살면 됩니더

묻지도 않은 말을 덧붙여 사내는 내가 친구인양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짧은 시간 간략히 말하는 폼새가 여간 아니다

마치 삼류영화나 소설같은 인생이다

사내는 인생을 즐기고 살고있었다 부적절하고 부끄러운 내용이지만

낮선 동갑내기에게 꺼림없이 당당히 말한다

택시를 내리며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라도 술집에서 만나면 밤새워 이야기하입시더 조심히 운전하이소'

 

친구놈이 마중을 나오며 들고있던 가방을 낚아챈다

빨리 가자 삼이 기다린다

병삼이는? 만난다고 안했나?

먼저 가 있다

마침 옆에 있던 찌짐집이 눈에 확 들어와 주인 아줌마에게 물어 본다

아줌마 부산 오뎅 있는교? 안 팝니꺼? 한두개 맛만 보고 싶은데

우리 집은 오뎅은 안하고 오뎅탕 합니더

오뎅이나 오뎅탕이나 야 묵고 가자 저녁은 기차타기 전에 묵었는데 오뎅이 또 묵고 싶다

그래 묵고가자 아줌마 여기 오뎅탕 주소

난 언릉 구석에 자리 잡으며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낸다

담배를 물고 불을 븥인후 병뚜껑을 돌리고 술을 부었다

가서 마시지 여기서 뭘라고

묵고가자

그래 묵자 삼이 혼자 술 잘 마신다

말 떨어지자마자 전화가 왔다

아 그래 알았다 지금 간다 그런데 아가 지금 도착했고 빈 속이라 밥 좀 먹이고 가께 좀 있어라 새끼야 금방 간다

전화하는 새 두잔을 안주없이 넘겼다

밤새 마실 텐데 지금 좀 마시면 안되나? 묵고 죽자 흐흐

그래 대충 묵고 가자 근데 삼이한테 뭐라 하꼬?

돼지국밥 묵고 왔다고 하자 어? 오뎅 나왔다 묵자 잔 빗네 받아라 아줌마 이러케 마이주면 우짜는교? 언제 다 묵노

언제부턴가 잊고 있었던 부산말이 입에 척 들어 붙어 앉아있었다

배고파 보여 좀 넉넉히 너어스예 마이 잡수소

할수없이 소주하나를 더 깠다

좀 시간을 보내고 돼지국밥 먹은 양 빈 입술을 다시며 술자리에 도착하니 고함 소리가 들린다

뭐하고 이제 오노 새끼들아

아까 돼지국밥 묵고 온다 안켔나 아가 배고픈데 빈속에 우예 술을 먹이노

여 근처에 국밥집이 어데 있노 딴데 갔다왔제? 술 냄새 나는데...

삼이는 마을금고 고객을 접대하느라 늘어난 배를 흔들며 소리를 높인다

그 놈의 관리범위는 가야에서 구포까지다

'아... 병삼이의 나와바리에서 구라는 안 통한다...'

 

술자리 막바지에 재근이가 전화를 한다

숙자가? 철래하고 삼이하고 술 마시고 있는데 오늘밤 너거집에서 재우자 두시에 갈께 알았제?

표정을 보니 전화 넘어 답이 고운 듯하다

오잉? 사정을 알고 있지만 최근에 다시 만난 여자 동창이라 서먹한데 그 집에서 자게 될 줄이야

술을 더 마시고 놀다 술집 앞에서 정신없이 실렸다가 택시를 내린 곳 초읍 어린이 대공원앞

얼마전까지 부모님이 그 뒷편에 계시고 내가 명절이나 생신때 오가던 길목

일이 있어 부산올 때면 미리 연락드리지만 초저녁부터 마신 술에 정신없이 새벽에 벨을 눌러도 금방 문이 열렸지...

주무시지도 않고 밤새 기다리시던 엄마는 맨발로 문앞까지 나와 얼굴을 만지며 반겼였다

얼굴 좋네 잘 지내제 식구들도?

 

머리를 흔들자 코앞에는 재근이가 웬 유니폼을 입은 여직원과 말을 섞고 있었다

사장님에게 전해 들었습니더 그런데 늦게 오셨네예 두시에 오신다더만...지금이 네신데 사장님은 기다리다 일이 있어 들어가셨어예 낼 뵐 수 있을겁니더

건내는 키와 세면도구 봉다리를 내가 받으며 묻는다

얼만교?

삼만삼천원인데 삼만원만 주이소

'그래 맞다 지인할인은 있어도 공짜는 안되지'

그래도 이 시간에 문을 열어 놓고 나보고 자러 오라고 반기는 사람은 엄마 다음으로 닌것같다

'숙자야... 니가 내 이모 해라

이 불금에 방을 비워 놓고 기다려 주다니

다음에도 부탁한다'

코리아나모텔 대표 양숙자

오늘밤은 진정한 SNS의 힘을 느꼈다

 

총무 재근아 고맙다 병삼아 술 잘 마셨다

 

친구들은 끝내 왜 술 마시러 왔는지 묻지 않는다

나도 술 마시러 왔다는 말 밖에 한 기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