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물한 기억의 편린을 찾아서 II

夢乭 2014. 7. 24. 08:31

훌쩍거리고 싶을 때 훌쩍 떠나는 병이 돌아

어찌어찌 도착한 곳

25년전 공보의 총각 시절 3년을 보낸 곳

기억이 가물해도 서로의 기억을 더듬어

오랜만의 만남을 기뻐하고

추억을 되새기며

회 한접시 마저 다 못 먹을 정도로

수다를 떠는 중년의 사내들이

총각으로 시간여행을 하다

짧은 반나절은

서울로 돌아가면서 또 다른 과거를 만든다

 

 

 

 

 

 

처음 검도를 입문한 도장

주인이 바뀌고 이사마저도 했지만

소문을 따라 근처에서 연신 고개를 돌려 찾았다

마지못해 슬며시 고개 내민 도장간판

일요일이라 문을 밀어 보지도 못하지만

눈에는

문짝없는 대문기둥들 사이로 보이는

도장 간판

초저녁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도장입구의 조그만 앞마당에는 

얕은 웅덩이가 형광등빛에 일렁인다

허리 굽어진 노검객의 유연한 칼과

움푹 꺼진 합판 바닥과 그 바닥의 청 테입이 

아스라이 떠올라

추억을 깨기 싫어 현대식 유리 문만 바라다만 보다가

차라리 그냥 발길을 돌린다

 

 

 

 

 

 

 

상주면 군내 버스 매표소는

잡화물도 파는 구멍가게

보건지소 맞은 편에 있고

겉포장을 단단히 했는데

안을 지키는 주인은 옛사람

그러나 주인은 알지 못 한다

나도 기억이 없다

지금은 없어진 다방간판은

둘다 알고 있는데

옆에 앉아 주인과 주절거리는 노인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도 노인도 나도

25년전의 보건지소를 같이 기억하고

그때 이야기를 길거리에서

웃으며 한다

노인은 자꾸만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날 쳐다보고 기억해 내려하고

난 저분이 그때 내 환자였던가를 기억해 내려고 

머리 속의 페이지를 넘겨 본다

상황은 맞으나 서로를 몰라 어색할 때

주인은 슬며시 쌀과자를 주면서 웃는다

'우리동네 사람이네....

살펴 가시다'

 

 

 

 

 

 

 

오래된 시간이 얼굴에 덮여있고 옷차림도 달라졌으나

급히 나오느라 그냥 나왔음에도

한 눈에 그때 그 아가씨들

여전히 같은 말투들

서로들을 멀리서도 알아보고 발을 팔딱팔딱거린다

멀리서 차를 몰고 오면서도 손을 마구 흔든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 그 처녀총각들

돼지수육에 소주 한잔을 하면서 

딸자랑, 아들 군대 이야기 하지만

우리들 이야기는 오래된 숨은 일을

서로서로 각인 시킬 뿐이다

시간이 갈 수록 확인되어지는

처녀총각시절 남 모르는 가슴앓이들

가슴 떨려 말 못하고 묻어둔

섬마을 선생에 대한 추억을

여사님이 되어 웃으며 말한다

그래 다들 내 첫사랑들이다

 

 

 

 

 

 

 

먼 길을 돌아 어느듯 아파트 벤치에 앉아

여행의 끝자락을 접는다

반을 접은 세월의 자국이

확연해지는 순간

나의 젊은 이야기는 아직 그 곳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내 가슴에 뿐 아니라

알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

부분부분으로 나눠져 있었다

하나하나 찾아가는 편린이 

이토록 즐거울 줄이야

남은 생의 즐거움은

이제 부터 만드는 또 다른 기억의 조각들을

만드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