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단상들

로또의 꿈

夢乭 2014. 7. 26. 13:37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후

나이를 생각하면 뭔가 또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이 두려워 진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자랄 때 어른들이 젊을 때 일을 벌려라고 충고하기도 했었다

지나고 보니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직 젊은 피가 있을 때 열정이 있을 때

나이가 들어도 나이는 숫자일 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고 일을 별렸을 때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팔을 뻗어 뒤통수를 쳐 댄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은 얼마나 좋을 까

세상 걱정없이 누구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매도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돈이다

거창하게 말해서 자본이니 투자니 또는 투기니 하는 것들도

간단히 말하면 돈이 하는 일이다

돈을 벌어 잘 살고 돈을 날려 망하는 것 아닌가

지금은 돈 벌수 있는 능력이나 방법은 뻔한 것이고

그렇다고 과외로 뭘 더할 수 있는 여건이나 시간이 되지 않는다

체력도 나이도 사회적 기준으로 보아서는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에휴

점심시간후 나른한 기운에 날씨 탓을 하고 진료실내 선풍기를 켜면서 에어컨을 다시 조절한다

조금전 커피도 마셨는데 이상하게 졸리다

잠시 예약 환자가 오지 않아 짬이 생기는 바람에 멍하니 넋 놓고 있는데 백일몽 꾸듯이 잠시 돈 생각이 났다

왜일까? 웬 갑자기 돈? 뜬금없이 이 시간에 돈이 머리를 쓰치나?

지나고 보니 나하고는 돈이 인연이 없는 것 같은데

난 타고난 염전노예 팔자지 돈벌 팔자가 아니지.......

 

다음 환자 부르는 소리에 입맛만 다시고 다시 모니터를 본다 24세 여자 환자

이 시간은 주로 가정주부이거나 노인들이 많은 시간이다

직장인은 출근전 출근후 진료를 위해 대부분 아침과 오후 막바지에 많은 편이다

그래도 아프면 아무 시간에 올 수 있지만 체감이 그렇다는 것이고 오늘은 주로 여자 노인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모니터에 환자의 차트를 띄우면서 습관적으로 말하며 화면속의 정보를 파악하느라 눈은 바빴다

 

여전히 정형외과의 기록은 미비하다

잘 모르는 질환을 협진치료하기 위해 통증과로 환자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뭔가에 불만이 많아 의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진료 사항을 하나하나 따지는 경우라든가

아니면 질환 파악을 위해 질문을 해도 건성으로 대답하여 문진이 어려운 경우

질환이 정형외과보다는 통증과 질환이라고 생각한 경우-이 정도는 미미하다

마지막으로 정형외과에서 치료를 해도 안되니 통증과로 떠 넘기는 경우도 있다

정리하자면 통증이나 증상이 심하지만 수술을 할 수 없는

팔순 노인이 보호자없이 온 경우을 생각하면 되겠다

'에고 아프면 죽어야지 그런데 다리 저리는 것은 언제 나아?

난 허리는 아픈 적 없는데 허리 검사해야 한데

검사없이 치료하면 안되나? 주사는 비싼거 말고

아이고 약은 많이 먹어봐서 소용이 없어 이제 약 안먹을 거야

다른 병원에 갔더니 수술해야 한다고 검사하자고 해서 했는데 검사 결과가 심하게 나왔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나이가 많다고 수술을 못한데

괜히 돈만 쓰고.....아 그러니까 이제는 검사하지 말고 좋은 약 쓰고 빨리 낫게 해줘

수술은 못한다니까'

이렇게 한꺼번에 준비된 말을 하시곤 이제 귀를 닫는다

이제 내 차례다

언제 부터 아팠어요? .........................뭐라고?

다른 병원 검사는 뭘했는데요..............뭐라고?

허리가 아파요? 다리가 저리세요?........뭐라고?

혹시 먹고 있는 약 있으세요?..............뭐라고?

오늘은 물리치료만 받으세요..............뭐라고?

다음에 오실 때 보호자와 같이 오세요...뭐라고?

..........^^;                                   .......@@?

.........!(ㅜㅜ)!...... OTL                 .......@@

이정도면 환자를 떠넘긴 이유를 알것이다

정형외과는 환자가 밀려 바쁘고 통증과는 한가하니까

그러나 그동안 협진으로 넘어온 환자를 보면서 느낀 짐작일 뿐 의도를 알 방법이 없다

기록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환자쪽으로 몸을 돌리자 갑자기 주변이 밝아 진다

긴 생머리, 하얗고 가렴한 얼굴, 오똑한 코, 시원스럽게 큰 입, 쌍꺼풀에 맑고 큰 눈

근래 보기 드문 깔끔한 패션을 한 큰 키에 날씬한 천사...아니 아가씨가 서 있었다

노인 위주의 환자를 보고 씨름하다 가뭄에 콩나듯이 보는 젊은 사람을 진료 보지만

이런 경우 영락없이 난 진료시간이 길어진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

정형외과 진료기록이 미비한 것이 천만 다행이다 좌측 외상과염(일명 테니스엘보다)

간단히 기록된 정형외과의 기록이 있고 그것으로 그럭저럭 치료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문진을 하기로 했다

왼팔이 아파요

다쳤어요?.................................아니요

그럼 언제부터 아팠나요?.............어제요

어제 뭔일 있었나요?...................무거운 돈가방을 들고 나서 부터요

(뭔 돈가방, 그것도 무거운 걸로)...양손으로 들었는데 4억원 현금이예요

??? 뭘 하시는 분이세요?..............은행 창구에서 일해요

아...그럴 수 있지요......................내가 보니 돈세탁하는 것 같은데...모르죠 우리는 그냥 업무이까...그렇지만 의심은 가요

돈세는 기계가 있지 않나요?..........돈세기는 기계가 하지만 돈띠는 손으로 직접해야 해요

얼마나 했기에?...........................한 시간 걸렸어요

한시간이나요?............................그렇게 걸리는 것도 처음이라 힘들었어요 왼손목으로 스넵을 써야 잘 감겨요

환자는 마치 왼손에 돈을 쥔 것처럼하고 왼손목을 휙하고 재빨리 돌리면서 꺽는다 유연하고 익숙한 쏨씨다(검도 잘하겠다)

그래요? 함 봅시다

슬며시 왼손으로 환자의 왼손목을 잡고 오른손 엄지로 환자의 왼팔꿈치 외측 상과를 눌러 본다

환자가 살짝 얼굴을 찡그린다 (찡그려도 매력적이다 서씨가 속이 안좋아 항상 찡그리고 다녔다는데 그게 매력 포인트였던가?)

아...아파요(옥구슬이 은쟁반위를 구르는 구나)

이런저런 문진과 촉진과 방사선 자료를 통한 진료는 끝났다

신경치료만 하면 진료완료 아이콘을 누를 일만 남았다

그러나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좀더 시간을 끌기 위한 뭔가 필요하다

 

쓸적 모니터를 보니 다음 대기한 환자가 없다 그래서 뜬금없이 묻는다

요즘 뉴스보면 범죄자들이 대포통장을 가득 가지고 있던데

그런 것은 은행 내부협조없이 불가능한 것 같은데 아니예요?

은행직원이 그런 일에 관여하는 것이 시스템상 불가능해요

그리고 한건만 걸려도 바로 짤리는데 그렇게 하겠어요?

그리고 의심스러운 자금이 들어오면 신고하는 시스템이 있어서 창구에서 바로 비상 연락을 해요

그렇게 하는데도 고객이 가지고 온 서류가 완벽하면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창구가 바쁘면 신경쓸 겨를도 없는 것도 사실이고요

대답이 똑 부러진다 얼굴만 이쁜 것이 아니다

요즘 돈있는 사람들은 비자금을 많이 만들어요 일반 직장인도 많이 만들어요

선생님도 우리 은행에 오셔서 비자금 계좌하나 만드세요

어이구 요즘처럼 바로 통장으로 급여를 쏘는 시대에 어떻게 가능해요?

그리고 비자금이 생겨도 계좌조회하면 다 나오게 되는데

계좌 조회를 피하는 방법으로 본인만 계좌조회가 가능한 서비스가 있어요

본인외 다른 사람은 아무리 조회를 해도 나타나지 않아요

그래요? 그런게 있어요? 서비스 이름이 뭐예요?

나는 재빨리 메모지를 당기고 볼펜을 잡았다

****서비스예요

(그날 적은 메모는 잃어 버렸다 지금 기억도 안난다

에구 날이 갈수록 기억력이 떨어짐을 실감한다 세월을 탓해야지

의사의 쉬운 설명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나중에 다른 소리하는 환자들의 심정을 알겠다)

근무하는 곳은요?

당산동 기업은행요 ***입니다

그곳은 여기서 좀 먼 곳인데? 어떻게 이렇게 멀리?

근처 피부과 약 때문에 약국에 왔다가 우연히 들렀어요

 

갑자기 머리을 쓰치는 찬바람이 인다

암시다 계시다 예언이다

정리를 하면 이렇다

오늘 뜬금없는 돈타령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천사도 우연을 가장하여 내에게 접근한 것이 틀림이 없다

 

오늘 신경치료해 드릴께요 치료를 마치겠습니다  저쪽으로 가셔서 준비하세요

말하면서 한가지 부탁을 했다

4억을 만진 황금손을 좀 만져보면 안될까요?

오늘 로또를 살 계획인데 재수 좋으라고....

그렇게 하세요....호호

역시 쿨하다

요즘 은행은 실력도 보지만 미모로 뽑는 것 아니예요? 하하하

립서비스를 한 후 진료를 마무리 지었다

오늘 진료 즐거웠어요 담에 아프면 꼭 우리병원 오세요

금방 끝날 진료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닥거린 것같다

그리고 그후 진료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없다

퇴근길의 로또방에 자동으로 로또를 사는 내가 기억날 뿐이다

퇴근전에 주위 실습학생이나 간호사에게 내 손을 만지게 하고 로또를 사라고 큰 소리 쳤다

 

..........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하니 진료실이 조용하고 차분한 것이 평사시와 다름없다

모두 출근했네? 하하하 모두 꽝이었어?

 

'서간호사 그 은행 여직원 연락처 전화번호있으면 전화해서 그 4억 위조지폐인지 확인하라고 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