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봄이 있는 주말 V
어제 토요일에 비해 비가 더 많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그래도 약속된 일정이라 평소보다 더 일찍 집을 나섰다. 전철역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사거리는 안개낀 것 마냥 뿌였다.
지난주 금요일에 인천 여행을 생각하고 미리 투어 해설사가 있는 코스를 찾아 보니, 토요일과 일요일 예약은 이미 마감되어,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주인 오늘 일요일에 해설사 신청을 해 놨었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에 문자가 왔다.
'해설사 배정'
Q&A를 보니 무료 이용이었다.
몇 차례 여행을 다니다 보니, 경치 구경을 다니는 것도 좋지만, 그 지역의 내력을 알아 보는 것도 좋은 것이라는 것을 '시티투어 해설사'가 동행하는 여행을 몇 번 경험해 보고 느꼈었다. 그래서, 인천에 대해 막연하고 단편적인 내용을 좀 더 짜임새있게 현장에서 설명을 듣고 싶었다.
인천역까지 전철로만 1시간 37~8분, 대략 집에서 출발하고 중간에 2회 환승 등을 고려하면 1시간 50분 정도 소요 예정이었다. 그나마, 고속.특급 전철이 있기에 가능한 시간이다.
역에서 만난 문화해설사는 연세드신 남자 분으로, 활기가 있어 보였다. 사실, 해설사는 5인 이상 단체에만 배정되었으나, 요즘같은 코로나 시기에 단체 예약은 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5인 이하만 해설사를 배정한다는 것이다.
'비록 한 명이라도'.
오늘 10시부터 시작하는 '2시간 도보 투어' 신청자는 나 혼자였다. 이틀전에 담당 해설사의 사전 연락으로 알았는데, 혼자니까 좀 더 빨리 시작해서 빨리 마치자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역에 9시 30분에 만나기로 했고, 오늘 아침에 서둘렀던 것이다. 신청할 때 1:1 여행가이드를 무료로 받게 될 줄 생각도 못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좀 부담스러웠으나, 인사를 나눈 후 대화가 금새 자연스러워 졌다.
어제 여주 여행으로 몸살이 났고, 비마저 부슬거려 몸 상태가 투어하기에는 부적당했으나,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이동하는 동안 다행히 특별한 불편이 없었다.
인천의 역사적 지명 유래와 인천역 개통에 관계된 '철도의 날', 등등, 자세한 설명은 기본이고 시작이었다.
"맞은 편 차이나 타운을 표시하는 큰 대문, 즉, 패루(牌樓)는 세개의 통로로 나누어지는데, 가운데 큰 통로는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고, 사람들은 '東入西出'하는데, 정면에서 보면, 오른쪽을 동쪽, 왼쪽을 서쪽이라고 가정하고, 동쪽 통로로 들어가고, 서쪽 통로로 나오는 '동입서출' 방식으로 드나든다고 합니다. 중국에는 중요한 거리에는 저런 패루을 만드는 관습이 있다고 해요..."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설명이 2시간 지속되는 것이다. 그 중에 짜장면의 발생지 '공화춘 짜장면 박물관'에 이르렀을 때, 간판의 의미를 설명들어 보니, 나름 심오했다.
또, 삼국지 벽화 앞에서 '초선'에 대한 중국인들의 생각을 말해주는데 좀 우스웠다. 초선 때문에 의붓 부자지간인 동탁과 여포의 파국이 일어나게된 것이므로, 이후 중국인들은 집안의 안녕을 위해 미인을 집안에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인은 따로 집밖에 두어, 두 집 살림을 해야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ㅎㅎ."
은근히 넉살 좋은 해설사는 이천이 고향이고, 그 곳 이천은 전기가 1972년에 들어 온 시골이며, 한 때 직장 때문에 부산에서도 거주한 적도 있었고, 인천으로 이주한 이후 현재까지 40년째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은퇴 후 문화해설사로 활약 중으로, 최근 심장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한 적이 있지만, 건장하고 목소리 좋은 청년같은 노장이었다.
차이나 타운을 거쳐, 일본 조계지의 은행거리를 둘러보고, 자유공원으로 올랐다. 공원에서 바라보는 인천내항은 비구름 영향으로 흐리게 보였지만, 대략적인 풍경은 부산항과 비교해 보면, 막힌 항구 느낌이었다.
"맥아더 장군에 대해 잘 아세요? 출신 지역과 계급은 압니까? 한번 퇴역 후 다시 2차대전 때 복귀하고, 70이 넘은 나이에 은퇴하면서 의회연설에서 남긴..." 해설사의 이야기는 귀에서 멀어지고 메아리 마냥 울리다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머리에는 다른 생각이 차기 시작했다.
맥아더 동상 앞에 섰다. 어릴 때 보았던 아버지의 사진첩에는 이 동상앞에 서서 찍은 젊은 아버지의 흑백사진이 있었다. 그 당시 동아대에 적을 두고 다시 서울대 입학 시험을 봤었다고 들었다. 결과는 낙방이고, 기분 전환으로 바람쉬러 갔다가 찍은 사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인지, 사진 속의 아버지는 몸을 움추리고 있었던거 같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어릴 적 내 기억 속의 인천은 맥아더 장군 동상의 흑백 사진이 대표적인 인상이다. 그 사진에는 아버지가 서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그때의 아버지보다 나이로는 두배 더 늙은 아들이 그 자리에 서있다.
아직 내 원적지로 남아있고, 또, 내 고향인 창원시 주남 저수지 인근의 신방리 모암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버지는 경남 인근의 수재들만 간다는 마산상고를 거쳐, 형편상 부산 동아대로 진학했었다. 그러나, 만족 못하시고 다시 서울대 진학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 한이었을까, 내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형제들에게 '공부해라..., 서울대가라... 출세해라..., 외국으로 나가 살아라...'라고 말하곤 하셨다. 그것들이 본인 당신의 인생 희망 사항이었고, 한이었던 같았다. 내 기억으로는 공부를 잘 했던 형님에게 그런 기대를 많이 했었으나, 그 희망이 이루어 지지 않자, 대를 이어 내려 갔다. 결국, '내 손주 중에 한 명이라도 서울대...'라고 한탄도 하셨지만, 그게 뜻대로,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아버지와 삼국지의 어떤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관우를 좋아한다는 내 말을 들으시고, 아버지는 유비나 관우보다 조조를 더 좋아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 어씀푸레한 기억 때문에 몇년 전 서점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 온 '조조평전'을 구입해 읽었었다. 소설인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조조가 아닌, 위왕 조조의 사료집을 토대로 '인간 조조'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위민제세(爲民濟世)'
'그럼, 젊은 시절 아버지의 가슴에 품은 포부는 어떤 것이었을까?'
'피 끓는 젊은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야망의 조조를 좋아하고, 시골보다 서울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넓은 세상에서 살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좁은 땅을 떠나길 원했던 젊은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 나의 젊은 시절 혈기를 되돌아 보고, 그 위에 나에게 물려준 DNA같은 아버지의 흔적을 점점이 찾아 이어 보면 떠오르는 느낌이 있다.
'창천항행(滄天航行)'
세상의 모든 것을 품은 저 울렁이는 푸른 하늘을 바다 삼아, 세계 어디나 가고픈 곳, 세상 무엇이던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더 넓은 세계 만방의 항구로 항해하는 것이리라.
맥아더 장군 동상 위로 흑백 사진이 겹쳐진다. 비오는 오늘, 인천 여행을 취소하지 않고 진행한 것은, 마음 깊이 새겨진 흑백 사진의 잔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어깨에 내리는 비는 그리움 눈물일 것이다.
자유공원을 끝으로 다시 인천역으로 돌아가 투어를 끝냈다. 역에서 해설사와 헤어지고 곧장 홀로 점심식사를 위해 다시 차이나 타운으로 올라갔다.
오전 거리는 한산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에, 비오는 오전 거리는, 마치 영화 세트장 느낌이 들 정도로 휑 했었다. 그나마 점심 시간이 가까워지자 거리에 인적이 늘어났다.
공화춘 간판이 보이는 중국집에서 '공화춘 짜장면'를 먹었다. 원조 '공화춘'과는 연관이 없는 집으로 간판만 같은 것이란다. 어릴 때 먹었던 찐하게 춘장을 뽁고 돼지비계 덩어리가 뭉텅 들어 있는 짜장면은 이제 찾을 수 없고, 물어보니, 이곳 차이나 타운에서도 카라멜이 섞인 물짜장면만 있다고 한다. '공화춘 짜장면'은 간짜장 느낌이 났다. 같이 제공된 조그만 밥 그릇이 보이는데, '공화춘 짜장면'의 특징이란다. 탕수육은... 뭐든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오후에는 인천역 바로 옆에 있는 '월미바다열차'를 타고 월미도 순환하며 돌아보기로 했다. 중간에 내려 관광하고 다시 타도 되는 시스템이었다.
승차표를 끊기 위해 승강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트를 탔는데, 같이 탄 할머니 두분의 대화가 열차의 인기를 말해 주었다.
"오늘 비가 오니까 이렇지, 평소 여기 줄이 엄청 길어. 사람이 많으면 오후 3시30분 쯤 마감하는데, 운 나쁘면 내 바로 앞에서 끊어지기도 해. 그땐 얼마나 신경질 나던지."
"오늘 짜장면 먹고, 또, 이것 타면, 제대로 인천 구경하는 건가?"
한분은 인천이 초행인듯 보였다.
열차 경험자와 초행 친구의 대화로 봐서는, 나도 오늘 쉽게 승차할 수 있는 것은 코로나와 비 덕분이겠다.
하지만, 비 속의 풍경은 아쉬웠다. 비가 사방을 안개처럼 가리고, 중간에 하차해서 찾아간 놀이 시설은 운행 중단이었다. 월미테마공원의 대회전관람차를 하나 타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월미공원 내에 국내 여러 정원을 복제해서 꾸며 놓은 곳은 관람객이 적어서 쾌적하게 돌아 봤으나, 반면에, 바다가 보이는 문화광장은 한산해서 오히려 을씨년스러웠다. '인천상륙 표지석'에 이르자, 부슬부슬거리는 비가 더 거세게 내리는 바람에, 일정을 접고 일찍 귀가하기 위해 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국민학교 시절 겉모양이 크다란 빵을 샀다가 속이 텅빈 것을 보고, '이런... 공갈같은 빵'이라고 욕하고 두번 다시 사지 않았었다. 그 추억의 공갈빵을 사기 위해 잠시 올라간 차이나 타운은 다시 한산했고, 군데군데 벌써 문닫은 가게도 보였다. 얼마전에 봤었던 종로거리의 폐점 가게들이 연상되는 우중충한 비오는 차이나 타운 거리였다.
인천역에는 우리 동네까지 갈 수있는 '수인분당선'이 있다. 돌아갈 때는 이 선을 이용할 작정이었다. 환승하지 않고 개포역까지 갈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수원으로 내려가서, 다시 수원에서 상행하여, 분당을 거쳐 수서 방향으로 가는 'V'형태의 긴 경로이기 때문에, 그만큼 긴 탑승 시간이 문제지만, 일찍 귀가하는 나에게는 별 문제되지 않았다. 2시간 37분, SRT타고 부산 가는 시간만큼이나 길었다. 오후 일정 절반을 전철 안에서 졸며 보낸 것이다.
'여몽여환(如夢如幻)'
꿈에서 봤을까, 환상을 봤을까.
젊은 날의 아버지와 더 늙은 아들이 만난, 비오는 주말의 인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