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단상들

MIND-BODY III

夢乭 2014. 10. 5. 17:39

몇개월 전의 일이다

물론 기억이 남을 만한 환자이야기다

지금은 소식이 없다 다시 방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환자와 이야기 하다보니 형제나 자매나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남자냐 여자냐 차이 뿐이지

그래도 핏줄이니 어쩌지 못하고 고민하고

마음아파하고

그래서 미워하고 울기도 한다

 

앞에 앉은 31살 여자 환자는 표정이 지쳐있다

누가 한대라도 때리면

그냥 울음보를 터뜨리거나

악다구니를 쓰면서 분풀이를 할만할 기세다

그래도 표정은 나이에 비해 순해보인다

들어보니 육체적 통증으로 고생하다

정형외과를 거쳐 나에게 온 것이다

정형외과적으로 특이 사항이나 심각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어디가 아프세요?

여기요....

하며 오른팔을 내민다

오른팔과 엄지가 아프단다

엄지를 보니 큰 못이 박혀 있었다 굳은 살 말이다

전에 쎅스폰을 취미로 하는 경찰을 치료할 때 봤던

엄지 손가락의 큰 못이었다

....? 색...섹..쎅스폰하세요?

내가 경상도 사람이라 발음이 좀 미묘하게 흔들린다 조심스럽다

클라니넷해요

엄청 열심히 연습하나 봐요

클라리넷은 쎅스폰 처럼 목줄 안해요?

목줄 안해요 몰입이 되면 몸이 흔들리는데

그때 목줄이 방해가 되기도 하고요

근본적으로 목줄을 하는 악기가 아니예요

아...내가 음악에 문외한이라... 그렇군요

그럼 하루에 몇시간 연습해요?

3-4시간 해요

몇년간 했었요?

전 음악을 늦게 시작했어요 고삼 일년 바짝해서 음대 갔어요

우... 노력보다 천재적 재능이 있었구나

좀 열심히 했지만 운이 좋았어요

대학을 가려니 음대가 더 가능성있어보여 고삼때 바꾸었거던요

주위 친인척이나 가족들중 음악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이런저런 인맥으로 교수들 개인교습을 많이 받았는데

도음이 많이 되었어요

그리고 클라리넷은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경쟁이 적었던 것도 있었어요

고삼부터 지금까지 하루 3-4시간 클랄넷한거예요?

아뇨 음악에 몰입할 때는 먹는거 자는거 빼고는 음악했어요

지금은 음악안해요

그냥 취미로.... 놓아버리기 아쉬어 시간 내어 악기를 잡아요

지금은 뭐해요?

뮤지컬 기획을 해요 이제 첫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잠잘 시간이 없어요

하루 13시간 정도 컴퓨터 작업을 해야하는데요

아마 손목이 아픈 것은 마우스를 오래 잡아서 그런거 같아요

잘 아시네요...원인을 아니 본인이 잘 관리를 하면 될 것같은데...

그리고 음악을 당분간 줄이고 쉬면 그렇게 아프지 않을 것 같은데

일을 줄이세요

저도 쉬고 싶은데요....

몸 여기저기 아프고 특히나 팔목이 아픈데....

일하고 나서 집에 가면 집살림 정리 빨래 반찬거리...

엄마 병간호까지 해야 되는데.....

동생이 안도와 줘요...

남동생인가?

여동생요....

여동생과 사이가 안좋은가봐....

난 걔가 어릴 때부터 얼마나 챙겨쥤다구요

지금도 걔가 집안일에 손하나 까딱 대지 않아도

오히려 걔 빨래나 방정리까지 챙겨주고 있어요

몇살인데? 동생이....철이 없네

....그래도 걘 사회생활하는데 있어서 제몫 하긴해요

집에서 나 좀 안도와 줘서 그렇지....

사회생활? 뭔 일 하는데?

'월드비젼'에서 일해요...

.....?

사실 난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 '비젼'이라는 말에

영상물 관련 업무를 하는 줄 알았다

촬영다닌다고 바쁘고 힘들어서 그러나?

ㅎㅎ 그게 아니고요.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인데요

말하자면 후진국, 예를 들자면 아프리카의 어린이 돕기나 교육 등에 관여하는

봉사하는 단체예요

그럼 동생의 도움을 받으려면 언니가 아프리카로 먼저 이민가야겠네 ㅎㅎㅎ

참 그런데 10년 넘게 시간을 음악에 투자했는데

왜 그만 두고 뮤지컬 기획을 하나?

좀 다른 길 같은데 어째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음악이니까

그렇죠...클라리넷으로 세계적인 음악가를 꿈을 꾸었죠

그래서 미국의 음악아카데미에 유학하였거든요

거기도 입학경쟁이 장난아니예요 이백대일이 넘어요

오우...이백대일....그걸 통과했다니 대단하네...

그런데 들어가 보니.... 아카데미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다는 거예요....

....??? 왜? 그 정도면 어디에서나 인정받는 것 아닌가?

한 악단이 클라리넷 1명을 모집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는지 아세요?

그런데 입학하고 보니 그 한 아카데미에 클라리넷하는 애들만 200명이 넘어요...

악을 쓰고 음악해서 세계적으로 성공하려고 해도 ..... 이런 환경을 보니 ....

도저히 자신이 없었어요...

그냥... 한국에 돌아왔어요

새로 시작한 것이 뮤지컬인데 ....

기획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분도 좀 넣었어요

그래서 잠도 잘 못자요...일하느라...걱정하느라... 몸도 아프고

......그래도 하루 3-4시간 클라리넷도 한다고?

아이고 몸이 안아플 수 없겠다

처방을 내면서 덧붙였다

동생을 타일러 집안일 분담해서 먼저 집안일부터 줄이라고...

그리고 포기한 음악을 하루 3-4시간 한다는 것은 취미가 아니다

미련을 버려라 나중에 성공하면 그때 취미로 해라

지금은 기획이 니 인생의 현재 목표가 아닌가? 음악이 아니다

그리고 철없는 동생을 나무라고...

쓸쩍 나쁜 사람 만들고(없을 때는 나랏님도 욕하는데 뭐)...

환자 속을 좀 풀어주면서 치료를 끝냈다

 

환자를 보내고 속이 안좋다

남도 아니고 자매끼리 마음상처를 갖다니

물론 형제들끼리도 마찬가지다....흔하지 않은가?

그래도 핏줄이라 평생 안보고 살 수 없지 않은가?

나도 둘째라 맏이의 심정을 모르고 살았다...아직도 잘 모르겠다

자랄 때 부모님들의 맏이에 대한 기대는 다들 알것이다

...집집마다 다를 바 없으리라

그래서 맏이들은 자랄 때 부모의 기대에 맞추어

뭐든 열심히해야 했고

또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을 강요받았다

내 형뿐 아니라 주위의 동네형들도 마찬가지다

부모 기대를 어깨에 지고...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고...

내가 어릴 때, 집안살림살이에 또 동생들 학비를 마련하려고

자신의 학업을 중단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던 학생들 이야기를 흔히 들었었다

..... 우리세대의 큰형님과 큰누나들은 그랬었다

 

....왜 그런 언니를 왜 고마워하지 않았을까?

문득 환자의 여동생이 되어 언니를 보게 된다....

....언니는 어릴때부터 부모를 관심을 독차치했었다

....초등때 한국무용이나 학원과외 등등 안하는 과외가 없고

....공부 적당히 하다가 부모 연줄로 일년 음악하고 대학가더니

....뭔 바람이 불어 해외유학까지 간단다

....그렇게 난리피우고 간 유학을 너무도 쉽게 중도에 때려치고 와서 하는 말이 '와...장난아니더라'

....그래 세계적인 음악가가 된다는 것이 장난같지 않지?

....그런데 말야 이제는 집에 좀 있지 또 뭘 한다고 일을 벌이나? 뮤지컬은 만만한가 보지?

.... 이렇게 언니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사는데....난?

....난...난... 나 혼자 컸어...난 내 혼자 이 자리에 섰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언니옆에 있었지 난... 그냥 언니 동생이었기만 했지

....이제 난 모든 것으로 부터 독립한 거야... 이 두 손으로 ...이 두 발로...

....세월이 흘러 몸 여기저기 아파오는 엄마는....왜 그러는지 아나? 언니는?

....엄마의 아픈 몸은 이제 언니가 책임지고 돌봐야 하는 거 아닌가?

....언니가 엄마의 몸을 망쳐 놓고 이제는 나에게 떠 넘기려고?

....난 못해 난 안해 니가 해

 

다음에 환자를 보면 이 역할극을 이야기 해 볼까?

.....틀릴까? 맞을까? 비슷할까?

 

궁금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몇차례 진료만으로 환자는 아프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후기)

다음주 외래에 앉아서 역할극에 대해 이야기 하고 동생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냐고 묻자

걔도 부모 지원을 나 못지 않게 잘 받았어요...유학간거 빼고

듣고 보니 동생입장에서 그럴만한 일일 수 있겠네요

사실은 엄마가 세자매인데요 중간에 있는 이모가 좀 그래요 ㅎㅎㅎ

또 그 다음 주 방문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얼마전 저녁을 함깨한 자리가 있었다고 한다 동생에게 전화약속을 했었단다

말은 깊게 하지 않았지만 동생이 언니가 하는 집안일 도와 주겠다고 했단다

동생과 대화가 많이 부드러워 졌다고 했다

이번 방문은 또 다르다 혼자 온 것이 아니다

기획한 뮤지컬도 대성공은 아니지만 만족한단다

그리고 얼굴이 달덩이처럼 훤하다

입이 연신 벙긋거린다

아픈거 아닌데 오늘 왜 오셨나...?

선생님 허락받으려 왔어요 참 저희 어머니예요

어머니 허락받으려면 어머니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모시고 왔어요 인사해 엄마

예...안녕하세요

....? 예...그런데...뭔 허락?

 

클라리넷은 손가락이 아파서 못하잖아요

그래서 어릴 때 했었던 고전무용을 다시 하고 싶어요

나 해도 돼지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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