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단상들

MIND-BODY II

夢乭 2014. 7. 29. 19:24

신발이 분홍색으로 화사하다

전체적으로 어지럽지 않고

단아한 패션을 유지하고 있지만

외모로만 봐도

조용하고 우아해 보이는 자세다

신발이 예쁘네요

아....발이 아파서 단화를 못 신어요

항상 운동화를 신어야 해요

예쁘다는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듯 하다

저번에 발 치료하고도 여전하세요?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나아졌어요

표정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만족하는 얼굴이다

그 얼굴은 처음 내가 봤던 얼굴이 아니다

맨 처음 진료실을 들어오는 순간이 떠오른다

 

간호사가 환자를 호명하며 진료실로 안내하자

말없이 들어서는 중년의 여자 환자

한눈에 고생없이 잘 지낼 만한 얼굴과

젊은 아가씨 못지 않은 몸매가 눈에 들어 온다

얼핏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화면의 차트를 보니 57세

만 나이로 그러니 대략 우리 나이로 59세 쯤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에 비해

더 어려 보이는 얼굴이다

몸매와 패션이 나이를 깍아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환자의 얼굴은

그렇게 밝지 않다

'난 이렇게 힘들고 아픈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요

제발 내가 환자라고 말해주세요'

표정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우울한 표정이 말을 하자

더 우울한 목소리로 나에게 들린다

다리가 저려요 여기저기서 치료해도 여전해요

난 환자의 말을 끊고 다시 물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프세요?

오른 다리가 저리세요? 왼다리예요?

문진을 시작하면서

표정과 몸의 움직임을 살폈다

문진 내내 가라앉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내가 묻는 질문에 기억을 되살려가며

또박또박 대답한다

이런 환자는 흔하지 않다

오히려 내가 더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하다

 

문진을 마치고

의심되는 질환을 찾아내기 위해

허리부위 방사선 검사와 MRI 검사를 실시하고

결과가 나올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다음 환자를 불렀다

 

검사결과지인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판독이 없지만

영상자료가 완료되었다

대략적인 판독을 할 수 있는 나는 환자를 불러 이야기한다

지금 판독지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설명드리고 정확한 것은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소견이 나오면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이어 영상자료를 모두 설명하며

디스크이지만 심하지 않아

수술할 정도는 아니지만

증상이 영상자료와 일치하지 않으므로

좀 더 한가지 검사를 해 보겠습니다

추가로 경막외 조영술을 실시하였다

 

예상대로다

디스크는 심하지 않으나

그 주변이 유착이 되어 있어

주위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타 진료기관에서는 놓쳤던 것으로

이로 말미암아

통증이 조절되지 않았던 것이다

난 흔히 이런 경우를 봐 왔던 관계로

설명하기가 쉬웠다

대체로 '허리 수술후 통증 증후군'이 이에 속한다

이외 허리 디스크의 반복적 미세 손상이

결국은 유착을 일으키고

요통을 동반한 다리저림을 나타낸다

공통점은 손상부위의 신경유착이다

이런 유착은 MRI나 CT, X-ray로는 찾을 수 없다

근전도 검사에서 신경손상이 나타나기도 하나

영상자료는 아니므로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것들 이외에도

신경유착을 유발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영상자료만 가지고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래서 이 환자는 여러 병원에서 물리치료만 하다 증세 호전이 없어

친구의 소개로 멀리서 온 것이다

멀리라 하지만 실은 서울 안이다

 

수술은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신경유착을 해소할 만한 특수 시술을 권유했다

'풍선을 이용한 신경성형술'

이름이 생소할 수 있으나 꼬리뼈쪽 공간을 통하여

유착부위로 가느다란 관을 진입시키고

관이 유착부위에 도달하여

저항으로 전진하지 못할 때

관 끝에 숨어 있던 풍선을 손잡이에 연결된 주사기를 사용해 부풀린다

그러면 유착된 부분이 떨어지면서 공간이 확보되는 것으로

유착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쉬워 보이나 생각밖으로 단단히 유착이 이루어진 경우가 많아

실패률이 상당히 높다

일반적으로 20-30%로 본다

허리 수술후 발생하는 유착은 더 어렵다

그런 경우 실패률을 더 높게 잡아야 한다

실패률을 미리 이야기 하는 이유는 

이 시술은 보험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급여로 환자가 100% 지불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시술후 통증이 재발하든가 

아예 관이 진입을 못하고 시술이 실패했을 때

환자의 경제적 손실이 막심하므로

환자의 불만으로 인한 의료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것이 내가 고민하는 이유다

그래서 난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미리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실패 가능성을 동의하는 환자들만 시술한다

대부분 시술비가 비싸서 손사래를 치기도하는데

요즘 실비보험에서 비용을 대부분 보전해주기 때문에

실비보험을 가입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한다

 

이 환자는 시술을 받았다

시술후 증상 호전을 보이며

추가 치료를 내가 지시한 날짜에 꼬박 받는 모범 환자다

난 이 환자의 나날이 '좋아지고 있어요'라고 하는 말이

내 자신을 허뭇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내가 더 열심히 환자의 증상관찰과 생활패턴을 상담하면서

숨어있던 근육통을 찾아내어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환자의 고질병도 찾아 치료 중이다

 

먼저 왔던 환자의 친구를 진료하면서 알게 된 정보다

환자는 1년전에 사별을 하고

시부모를 모시다가 본인의 몸이 아파 

더 이상 시부모를  봉양하기 힘들어

시부모를 요양원에 모시고

매일 요양원으로 찾아 간다는 것이다

 

이외 환자의 정보를 필요 이상으로

노출할 수 없어 그만 언급하나

그 친구의 말에 따르면

천상 여자, 사랑스러운 부인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지통증이

그녀의 얼굴을 무겁게 만든 것이다

아마 통증이 있었어도

수년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의 주변 상황이 최악이므로 

마음이 지쳐

통증을 더 심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밝은 신발' 하나로

그녀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치료를 하면서 물었다

하시는 운동 있으세요?

전 할 줄아는 운동이 없어요

그 또래에 그만한 경제력이면 한번씩 해보는

골프 폼내기 운동(?)도 안한단다

그럼 여가시간은 뭘 하세요?

요즘은 그림을 그리려고 화실에 등록을 하고 며칠째 다니고 있어요

취미로 그림이 최고죠, 그렇죠? 소시적 그림을 좀 하셨나 봐요?

그림 못 그려요 학생때 하고 싶은 것을 지금하는 거예요

애들도 다 커서 손댈데 없고 심심하고 겸사겸사로 해요

슬하에 몇이나 있어요?

아들하나 딸하나

에휴 애들이 아직 결혼도 안하고....나이는 서른들이 넘어서도

 

이런 대화가 신경치료 동안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미 질환에 대해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다

올 때마다 반복하는 설명이라 환자도 반의사다

치료 내용을 설명하면 바로 납득한다

역시 좋은 의사를 만나야....흐흐

 

조만간 이 환자는 신경치료보다는

투약위주로 전환하여

신경이 안정될 때까지

경과관찰만 하게 될 것이다

 

내 형님은 대학생 시절에 나와 술마시면서 한 말이 있다

'내가 맏이라서 형제들에 대한 책임감에 힘들거나 

부모말고 내가 의지하고 싶은 누구를 찾을 때

마음이 너무 힘들 때는

내게도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마 이 환자가 통증이 사라지고 밝게 활짝 웃을 때는

형님이 한번쯤 꿈꾸던 그런 누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환자는 조만간 내 진료실에서 졸업할 것이고

외래에서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난 또 다른 우아한 여자 환자를 만나면

이 '형님의 누나'를 떠올릴 것 같다

 

'우아함은 병원에서도 의사의 정중한 대접을 받게 만든다'

 

....................

 

그런데, 과연 육체적 통증이 사라지면

마음의 근심도 사라질까?

정말일까?

그럴까?

 

'진료실 단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MIND-BODY III  (0) 2014.10.05
MIND-BODY II-1  (1) 2014.08.24
MIND-BODY I  (0) 2014.07.29
목허리 만성통증  (0) 2014.07.28
로또의 꿈  (0) 2014.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