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단상들 19

'별' 외전 I

일하는 도중에 간간히 휴식을 하며 읽어 보기 위해 열어 놓은 게시판을 보다보면 간혹 재미있는 소재로 이야기를 꾸며 참지 못할 웃음을 짓게 만드는 글이 간혹 있다. 누가 짧은 이야기를 올리고, 그 글에 여러명이 댓글과 대댓글을 달면서 서서히 하나의 이야기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이 글도 게시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별 외전을 본 후, 또 다른 형태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나의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의 수업 중 언급한 짧은 이야기로 반 학생들 모두가 웃음을 참지 못했었다. 대략적인 흐름은 기억대로 가지만 여기저기 글을 덧붙여 짧은 이야기로 만들어 봤다. ...... 여드름과 땀내에 찌든 사춘기 시절에 교과서에 실린 알퐁소 도데의 단편소설 '별'이 있었다. 내용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테파네..

진료실 단상들 2025.03.23

240903진료실의 세월

전에 환자가 주고 간 행운의 클로버 잎새 액자가 며칠 전부터 눈에 자꾸 들어 온다. 항상 그 자리에 놓여 있어 특별히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건성으로 보고 지나쳤을까. 며칠 전부터 색바랜 잎사귀들이 마음에 거슬린다. 지난 차트를 열어 보았다. 통증 주사를 맞지 않아도 정형외과 외래를 통해 물리 치료를 계속하고 있을지 몰라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진료 기록은 그때 내가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런 경우는 일반적으로 2 가지 이유가 있겠다. 하나는 증상이 해소되어 다음 통증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냥 일상 생활을 하는 경우이다. 두번째는 그 동안 치료에 만족하지 못해서 병원을 옮기는 경우이다. 어쨋던 시간이 지나면 통증 때문에 다시 방문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있기에 크게 마음 쓰지 않는다. 그..

진료실 단상들 2024.09.03

흑임자떡

직원이 맛보라고 종이컵에 흑임자떡을 몇 조각 넣어 가지고 왔다. 뭔 일이 있냐고 물으니, 어제 시장에 갔다가 눈에 띄어 샀단다. 일과 중에 간혹 간식으로 이것저것 먹기도 하지만, 떡은 오랜만이다. 흑임자 깨가루를 묻힌 떡이 쫄깃쫄깃하니 씹는 맛도 있기도 하다. 같이 일하는 간호인력이 젊은 사람들이라 다양한 군것질 거리를 가지고 온다. 빵, 사탕, 쫀드기, 말린 바나나 과자, 등등. 특히 친정이 군산인 간호사는 한번씩 친정 나들이를 한 다음날 출근할 때면 홍어 무침을 가져오곤 한다. 그러면, 그날 점심은 수술방 직원 전부 식당으로 올라가서 반찬으로 홍어 무침을 즐긴다. 홍어 무침은 냄새가 나지 않아 싹힌 홍어를 싫어하는 사람도 먹을 수 있다. 때로는 계절별 과일도 먹기는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간식거리를 ..

진료실 단상들 2024.08.22

240718고기집노숙자모녀

누가 더 나쁜 사람인가? .... 1. 공짜 밥에 고기 원하는 노숙자. 2. 한번만 공짜 밥 주고, 이후 공짜 밥 거절한 식당 주인. 3. 희생은 남의 일. 입만 살은 모녀. 이 영상이 주작이 아니라면, 절묘한 상황이네. 추가하면, 4. 노숙자 관리를 포기하고, 그냥 방치한 담당 공무원. 유사한 이야기가 주위에 많다. 요즘 흔한 사건인가 보다. 예) 오늘 외국인이 진료를 받으려 왔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중국인이었다. 5 개월 전에 왼쪽 고관절 인공관절 치환술을 받은 후 엉치와 허벅지 앞쪽의 통증으로 치료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관절 운동이 전혀 되지 않고 통증이 지속되어서 본원에 왔으며, 결국 정형외과를 거쳐 내게 진료 의뢰되었다. 앉자마자, ''수술 잘 됐다고 했는데, ....(어찌어찌...). 지금 그..

진료실 단상들 2024.07.19

240618여의도의사집회

오전 일을 마치고, 병원을 나섰다. 점심은 미리 간단하게 먹은 후다. 오후 1 시에 병원 밖을 나서니 뜨거운 햇살이 머리에 쏟아진다. 이 시간에 병원을 벗어나니 뭔가 허전하다. 응급 수술이 발생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마음을 굳혀 발걸음을 빠르게 전철역으로 돌렸다. 직원들에게는 오후 수술이 없으니 개인적인 볼 일 때문에 일찍 퇴근한다고 말해 두었다. 무단 퇴근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내가 어딜 가는지 짐작할 것이다. 여의도역에 내려 3번 출구를 찾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개찰 후 3번 출구 쪽으로 나가는 것이 보인다. 짐작으로 봐도 흰머리와 굽은 듯한 허리의 노인은 의사처럼 보였다. 뒤에 선 덩치 큰 중년의 남성도 등에 작은 가방을 메었지만, 손에 든 모자와 반소매 상의에 팔토시는 햇빛을 ..

진료실 단상들 2024.06.20

240616행운의 클로버

오늘 환자가 주고간 선물이다... 72세 여자 환자로 어깨 통증으로 방문했다... 이 환자는 어깨 회전근개 근육 손상으로 수술을 권유받았으나, 거부하고 진통 주사만 맞겠다고 온 환자였다... 두번째 방문인데 환자의 걸음걸이나 팔다리의 움직임이 어째 좀 이상하다... 결론은 파킨슨 환자였었는데, 초진시 환자가 본인의 기저질환인 파킨슨 질환에 대해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로 초진시 문진을 할 때 환자의 과거력이나 투약 내역을 물어 본다... 이 환자의 초진 기록이나 이후 재진 기록에도 파킨슨 질환과 투약 기록이 없다... 다시 수년 전의 차트도 뒤져 봤다... 기록이 없다... 결국 오늘 환자가 온 몸을 흔들면서 진료실로 들어 와서 직접 말함으로서 내가 파악할 지경이었던 거다... 그리고 저번 방문 ..

진료실 단상들 2024.06.16

촌지

오래 전의 일이다. 내 외래 진료실 옆에 처치실이 있었다. 간혹 정형외과 진료가 밀리거나, 바쁜 경우에 간단한 처치는 내가 먼저 일차적으로 처치를 하고, 정형외과 선생이 나중에 마무리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간단한 소독, 봉합, 등등이었다. 10여년 전 어느 따뜻한 봄날, 늦은 오전 시간으로 대충 기억된다. 환자가 없어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처치실 밖에 있는 싱크대 앞에 간호사와 남자 어린 아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손을 다쳤는지 손을 싱크대에서 세척하는 중이었다. 남자 애의 나이는 예닐곱살 쯤으로 보인다. 간호사가 손을 가아제로 부빌 때마다 애는 몸을 좌우로 흔들며 몸을 움찔 거렸다. 그래도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았다. 옆으로 보이는 앙 다문 입이 '아파도 안 울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상처가 얼마..

진료실 단상들 2021.06.18

엄마와 딸

접수된 환자 이름을 보니 낮설다. 그런데 차트는 2주 전에 진료를 본 것으로 나와 있다. 요즘 기억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확연하다. 그래서 차트에 진료 기록을 시시콜콜한 것도 써 넣어서 다음 진료 때 기억을 더듬을 여지를 주고자 하기도 하고, 초진시 자세한 증상을 기록해 놓고 재진시 재점검하면 질환 환기가 되는데, 이는 재진시 질환 파악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 차트 기록 상의 무릎 통증, 왼다리 저림, MRI 영상자료, 지난번 치료, 동행한 보호자... 기억이 날듯... 환자는 보호자의 엄마다. 60중반을 넘은 환자와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딸의 나이는... 30초중반쯤... 요즘 마스크로 얼굴이 가려져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보호자와 함께 들어오는 경우가 없잖아 있어도 흔한 경우가 아니라서 희미하게 기..

진료실 단상들 2021.03.12

군인환자와 탈영병, 그리고 카톡

어제 마취 중 정형외과 입원환자 협진 연락이 왔다. 마취 중이라 바로 환자를 보지 못하고 어느 정도 마취와 수술 준비가 끝난 후 병동에 연락하여 환자를 수술실에 있는 내 방으로 불렀다. 난 요즘 마취만 전담하는 걸로 해서 외래 환자를 보지 않는다. 그래도 간혹 정형외과에서 신경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나에게 협진을 요청하곤 한다. 그래서 통증외래 진료실이 없음에도 환자를 수술실의 내 방에서 진료를 하고 수술실에서 신경차단술 주사나 시술 등을 한다. 환자는 군병원에서 치료 중 호전이 되지 않아 민간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왔다는 군인이다. 보호자인 어머니와 함께 들어 오는 군인은 대략 1년 5개월 전부터 양쪽 무릎이 아팠고, 군 병원에서 치료했으나 특별한 호전이 없었으며, 7개월 전에 심한 훈련 후 증세가..

진료실 단상들 2020.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