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중이라 바로 환자를 보지 못하고 어느 정도 마취와 수술 준비가 끝난 후 병동에 연락하여 환자를 수술실에 있는 내 방으로 불렀다.
난 요즘 마취만 전담하는 걸로 해서 외래 환자를 보지 않는다.
그래도 간혹 정형외과에서 신경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나에게 협진을 요청하곤 한다.
그래서 통증외래 진료실이 없음에도 환자를 수술실의 내 방에서 진료를 하고 수술실에서 신경차단술 주사나 시술 등을 한다.
환자는 군병원에서 치료 중 호전이 되지 않아 민간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왔다는 군인이다.
보호자인 어머니와 함께 들어 오는 군인은 대략 1년 5개월 전부터 양쪽 무릎이 아팠고, 군 병원에서 치료했으나 특별한 호전이 없었으며, 7개월 전에 심한 훈련 후 증세가 악화되어 오늘 내 앞까지 오게 된 상황이다.
문진과 MRI등 영상자료와 촉진 등으로 미루어 여러 가능성을 설명하니, 환자는 군부대나 정형외과에서 설명들은 것과 별반 다름없는 것이라, 여러번 들어서 그런지 나의 설명에 이해도가 빨랐다. 오랜 병치래로 병원을 다니면서 의사와 소통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우는 의사가 자세히 의학적 설명을 해도 된다.
원인과 치료법 등등.
궁금한 핵심적 질문도 할 줄 알고, 그에 대한 의학적 설명도 조그만한 보충 설명을 겉들이면 쉽게 이해한다.
오랜 기간 질병에 시달리며 많은 의사들을 만난 결과일 것이다.
특히나 군 복무 중이라 군병원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군 생활에 은연히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어떻게 해서 군병원을 벗어나 민간병원까지 오게 됐는지 모르나, 이왕 우리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하기로 작정하였고, 더욱이 정형외과적으로 더 할 치료법도 없고 진통제 투약과 물리치료, 휴식과 안정 뿐이라 하니, 내가 해줄 것은 통증 경감을 위한 대증요법으로 신경차단술을 실시하는 것이다.
나아가 증상변화 추이를 관찰하면서 혹시 모를 새로운 진단명을 찾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요량이었다.
각 과의 접근법의 차이로 진단이 달라지는 것은 간혹 있기도 하다.
즉 정형외과가 근골격에 치중하여 물리적 손상에 집중하여 관찰할 때, 통증과인 나는 신경손상에 관심을 두고 관찰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과의 의견을 취합하고, 의논하여 가능성있는 진단과 치료법을 선택하여, 서로 과에 맞는 치료를 각자 동시에 하던가, 또는 어느 한 과가 도맏아서 치료하는 것이다.
이제 이 환자는 정형외과를 이병원 저 병원, 군병원 등을 돌다가 내 환자가 된 것이다.
"오늘 내가 진찰한 것으로는... (여차저차)...하니, 오늘 신경 차단을 하고 경과를 봐서, 호전 여부에 따라 다음 치료 방법을 찾아 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다음 치료는 다음 주 월요일에 할 예정입니다."
"제가 다음 주 월요일에 복귀해야 합니다."
환자가 목소리를 낮게 하여 소근거린다.
실망과 하소연이 묻어있다.
환자가 군인이고 치료 기간에 제한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군병원에서 치료해도 안 낫는데, 그렇다고 민간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할 수도 없고... 아무튼 빨리 낫게만 해주세요. 부탁합니다."
옆에서 묵묵히 앉아있던 보호자가 한 마디한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겠지만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보호자로써 금쪽같은 자식 따라 다니며, 만나는 의사들에게 자식대신 많이 하소연하고, 부탁하고, 그럼에도 호전이 없어 고생하는 자식을 보며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군병원에서는 딱히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요즘 코로나때문에 외부병원에도 잘 보내 주지도 않아요. 이번에 병가로 나와 치료받지만 월요일에 복귀해야 하니, 그 전에 치료를 더 받을 수는 없습니까?"
마음이 답답하고 급한 것은 이해가 되나, 치료를 자주 많이 받는다고 더 빨리 치료된다는 것이 아니니, 나도 답답하다.
분위기를 바꾸어 보려고 우수개 소리를 실없이 하게되었다.
"뭐 요즘 군대가 민주화되어서 부대에 카톡으로 연락만 해도 병가 연장이 된다던데, 부대에 연락해서 병가를 좀 더 연장해 보지..."
"그건 '절~때' 안됩니다. '절때' 안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립니다."
진료실 들어온 후 차근차근 이야기하던 환자... 아니 군인.
이 군인이 갑자기 언성을 높이면서 큰 소리로 대꾸를 한다.
눈에는 목소리보다 더 큰 불꽃이 일렁거린다.
세태를 비꼬길 좋아하는 내가 가볍게 웃음거리로 한 이야기였지만, 병에 시달려 온 군인은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는가.
아니면, 불공정한 세태에 진정으로 분노하는 것인가.
물어 보지 못했으니 뭔지 모르겠고, 웃자고 먼저 말꺼낸 난 웃을 수가 없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군인 환자는 다리를 절며 복귀할 것이다.
어쩔 수없이 일정을 앞당긴 내일 신경 치료 후 증상이 좋아지고, 그래서 반복 치료로 좋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면, 마음만이라도 편하게 복귀할 수 있겠지.
그래서 내일 치료 후 조금이라도 호전되길 바랄 뿐이다.
아들 병역면제로 온갖 수모를 격은 이회창이 문득 생각난다.
오늘날 달빛 나라에서는 탈영병도 안중근 의사와 어깨를 나란히하는 세상이 됐다.
정말 개천에 개.돼지.미꾸리가 우끌거리는 세상인가 보다.
광화문 광장에는 또 산성이 세워진다네. 한글날에...
코로나를 막는다나 뭐라나.
변종 '광화문 코로나'가 생겼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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