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외래 진료실 옆에 처치실이 있었다.
간혹 정형외과 진료가 밀리거나,
바쁜 경우에 간단한 처치는
내가 먼저 일차적으로 처치를 하고,
정형외과 선생이 나중에 마무리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간단한 소독, 봉합, 등등이었다.
10여년 전 어느 따뜻한 봄날,
늦은 오전 시간으로 대충 기억된다.
환자가 없어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처치실 밖에 있는 싱크대 앞에
간호사와 남자 어린 아이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손을 다쳤는지
손을 싱크대에서
세척하는 중이었다.
남자 애의 나이는
예닐곱살 쯤으로 보인다.
간호사가 손을 가아제로
부빌 때마다
애는 몸을 좌우로 흔들며
몸을 움찔 거렸다.
그래도 아프다고
소리치지 않았다.
옆으로 보이는 앙 다문 입이
'아파도 안 울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상처가 얼마나 큰지 궁금해서
싱크대 앞으로 가서
애 뒤에 서서 살펴보았다.
오른손 바닥이
깊고 길게 찢어져 있었고,
이물질이 끼여 있어
그냥 소독하고 봉합하기에는
오염이 심해 보였다.
옆으로 살짝 돌아
애의 얼굴을 보았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이지만,
눈물이 맺힌 눈은
똘망똘망 했다.
간호사가 가아제로
상처를 부빌 때 마다
몸을 움찔거리지만
소리치지 않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니가 어른보다 낫다.'
어른들 중 일부는
'꼭 주사를 맞아야 하나요?'
'아야야, 거길 만지지 마세요. 너무 아파요'
호들갑스럽게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다.
"잠깐만, 애가 아파하니까,
일단 마취부터 합시다.
어짜피 봉합하려면
국소마취를 해야하니,
미리 부위마취를 한 후
안아프게 해서
상처를 깨끗이 세척합시다."
애를 다시 처치실로 옮기고
침대에 눕혔다.
상황을 파악을 해서 인지
애가 협조를 잘 했다.
먼저 손바닥쪽 손목에 소독을 하고
손바닥으로 가는 '정중신경'에
마취제를 주사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손바닥을 자극하고 아픈지 물었다.
애는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다시 싱크대 앞으로 가서
상처부위를 세척했다.
세척하는 동안 애는 연신 뒤돌아
날 보곤 했다.
앙 다문 입은 풀어져 있었고,
몸 흔들림은 없었다.
...........
환자 한명을 진료한 후
고개 돌려 싱크대 쪽을 보니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꽤 흘렀던 것 같았다.
그때, 애가 처치실에서 나왔다.
오른손에 붕대가
감겨있는 것으로 보아
봉합이 끝났고
귀가하려는 중이었다.
열린 진료실 문으로 날 보고는
쭈삣쭈삣 다가 오던 애가
왼손으로 주머니에서
사탕과자 하나를 꺼내어
내 손에 올려 놓았다.
문득, 병원에서 애가
어떤 소리를 지르던가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애를 보내고 나서야
알았다.
.........................
어제 수술실 직원과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중에 나온
내가 환자에게 받은
촌지에 대한 한 일화다.
"걔가 가진 것 모두 다 줬네요. ㅎ ㅎ"
한 간호사가 말했다.
참조)
마취에는 전신마취와 부분마취가 있다. 전신마취는 잘 아는 것이고,
부분마취는 국소마취와 부위마취로 나뉜다.
국소마취: 손상부위 주위에 마취제를 주사기로 주입하는 마취(침윤마취)
부위마취: 상지나 하지의 손상부위를 처치하기 위해 해당 신경을 마취제로 차단하는 행위(척추마취, 경막외마취, 상박신경총차단, 말초지차단)
예)
국소마취: 찢어진 손바닥 주위에 주사기로 마취제를 주입하여 마취 후 봉합: '국소'마취하 봉합
부위마취: 찢어진 손바닥으로 가는 신경을 목이나, 겨드랑이, 팔꿈치, 손목 , 등에서 찾아 마취제를 주입후 마취하여 봉합: '부위'마취하 봉합
수면마취는 전신마취가 아니고 부분마취를 한 후 정맥으로 진정제를 주입하여 수면을 유도후 유지하는 방법.
'진료실 단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616행운의 클로버 (1) | 2024.06.16 |
---|---|
BPB nerve PCA procedure (0) | 2023.09.01 |
엄마와 딸 (0) | 2021.03.12 |
군인환자와 탈영병, 그리고 카톡 (0) | 2020.10.08 |
拳鬪娘子 (0) | 2018.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