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직전에 정형외과 외래에서
환자협진을 요청했다고
수술방 간호팀장이 말한다.
마침 오전 수술이 막 마쳤던터라,
바쁘지만 빨리 치료를 하고
식당 갈 생각에 바로 환자를 부르라 일렀다.
여자 20살
정형외과 차트에는 기본적인 병력과 함께
권투선수라 기록되어 있다.
여자 권투선수라...
여자 연예인 이시영이 권투를 한다지...
환자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연신
..예..
..알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등등 마치 군인처럼 말을 한다.
운동선수라 말투가 평범하지 않다.
얼굴은... 미안하지만 반전이 없다.
작은 눈에 안경을 쓴..
각진 턱이지만,
그렇게 우락부락하지는 않다.
그래도 아무리 나이가 깡패라 해도,
우리의 맹원이가 3라운드 권투시합을 한 후
부은 얼굴이 더 예쁠 것이다.
아무튼 왼어깨가 아프다하니,
각종 영상자료 및 치료 경과지를 참조한 후
실시한 이학적 검사에서
회전근개 힘줄염이 의심되었다.
즉 어깨주위 힘줄 손상 및 염증이라는 것이다.
질환이나 통증의 기전에 대해 설명하고
신경치료를 하여 통증을 제어하는 것을
일차 치료 목적으로 하였다.
..주..주사 맞나요?..
.. 예, 가느다란 바늘을 사용하니 조금 따끔해요..
..아~C..
..욕도 하네?..
..아..아닙니다 버릇이 돼서요..
..그럼 나에게 하는게 아니면 욕해도 돼요..
.....
..자, 쪼오끔 따끔해요...
초음파를 보면서 어깨신경에 주사를 놓는다.
..으~음~...
주사 바늘을 빼고 액와신경에 다시 주사 준비를 한다.
..또 맞아요?..
..빨리 끝낼께요..
다시 주사를 천천히 찌른다.
..으~음~.. 아~..E...C..
..나에게 한 것아니지?..
..아닙니다..
..그럼 계속 해도 돼..
..차라리 주먹으로 맞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주먹으로 맞는 것이 주사보다 덜 아프다니.
다시 자세를 바꿔서 다른 부위에 주사를 준비 한다.
환자는 포기하고 눈을 감고 시키는데로 순순히 자세를 잡는다.
..마지막 주사니 조금만 참아요..
..으~으~음..
..아...E...C....
못들은 척 하고 주사를 계속 주었다.
환자는 고개를 돌리며 눈을 찔끈 감고 몸을 뒤틀다 못 참고 다시 신음을 한다.
..I see, I C, 李氏 ...
얼마나 아팠으면..
그때 옆에 보조하던 간호사가 한 마디 한다.
..이번에는 선생님께 욕한거 같은데요..
그말을 들은 환자가 고개를 돌리며 당황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아닙니다.. E..C..아닙니다..
주사 맞으랴 욕하랴 부정하랴 바쁜 환자다.
옆에 서있는 간호사의 눈에는 장난끼가 가득하다.
환자와 장난치면 의료법 위반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없다.
그나저나 11월에 시합이라는데 그때쯤이면 좋아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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