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삼아 하는 검도이지만 몸이 피곤하거나 마음이 심란하면
발도 칼도 몸받음도 원하는 데로 되지 않는다
칼끝은 상대의 중심을 비켜나 있고 흔들린다
순간적으로 들어오는 공격의 실루엣이 갑자기 나를 덮치고
머리 한 가운데 점을 찍은 후 내 왼어깨를 이미 지나가고 있다
내 칼은 허공을 휘저은 후 위로 쏟구쳐 있고 동시에
상대의 첫 공격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2차 공격에 적절하게 대비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오른 손목을 내어 놓고 있는 상태다
머리가 아니라도 손목으로 쉽게 끝나는 상황인 것이다
상대가 어떤 자세에서나 어떤 공격을 하더라도
내 눈에는 순식간에 지나가는 형체없는 그림자가 있을 뿐이다
마음은 일족일도 거리유지
그러나 발은 움직이지 않는다
손을 뻗어 공격을 하려 해도 상대는 나의 의도를 가볍게 쳐내므로서 날 좌절시킨다
뭘까?
어머니의 위암 수술하는 시기의 칼도 그랬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혼미한 시기도 그랬었다
그 지나간 그 시기의 칼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그때는 아예 칼을 들 수 없어
검도를 쉬었다
칼을 놓기 직전 치른 3단 승단 심사가 엉망일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덜한 편이나
.................칼이 흔들린다
최근 병원에 새로운 의사가 초빙되었다
그 동안 없었던 허리 수술이 늘어 날 것이다
며칠전 부터 새로 온 선생의 수술을 대비해
장비 점검이나 필요한 물품을 점검하라고 수간호사에게 말한 후
미비한 것이 있으면 병원측에 청구하고 빨리 준비해라고 일렀었다
정형외과 병원에 신경외과 선생이 초빙 된 것이다
정형외과 의사의 디스크 수술 술기와 신경외과의 수술 술기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여도
수없이 봐 온 마취과의사의 눈에는 많은 차이가 난다
특히 수술의사의 성향이 중요하다
대체로 일치하지 않으나 체험상
정형외과는 수술의 절개부위가 크다
반면 신경외과는 작다
그 차이는 정형외과의 수술은 허리 뿐 아니라 사지도 포함되므로
각종 도구를 많이 사용하는 수술이 다양하게 많고 힘이 많이 드는 경우가 많아
수술 절개를 크게 해야 한다
반면 신경외과는 뇌수술을 하는 과로 절개 부위를 가급적 줄이고
현미경을 사용한 수술이 많아서 수술부위의 시야가 좋지 않다
수련받는 과정에서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수술적 특성이 과별로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신경외과의 영입은 나의 마취업무에 영향을 미친다
마취유지를 위한 방법을 조금 달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크게 다를 것 없으나
현미경하의 수술은
환자의 조그만 움직임도 대지진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조그마한 출혈도 화산폭발처럼 쏟아 오르는 모습이 될 것이다
그래서 현미경 수술인 경우 마취과 의사는
환자의 근이완을 항상 잘 관찰하고 적절하게 유지해야 한다
또한 뇌로가는 혈류를 적절히 유지하면서
일정한 수준으로 혈압을 떨어 뜨려
수술부위의 출혈을 줄여 줌으로써
수술부위의 시야확보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저혈압 마취를 수술 동안 안정적으로 지속 유지해야 하므로
마취과의사의 모든 신경과 육감은
칼날 위에 서있는 형국으로 날카로울 수 밖에 없다
수술 내내 긴장의 연속이다
모니터의 심장박동소리와 혈압의 변화만으로
수술중 환자의 통증크기를 감지해야 하고
급작스런 변화는 환자의 비명으로 알고
즉각적인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곤두설 수 밖에 없다
날카로울 수 밖에 없다
또한 수술하는 의사와 보조 인력이 서로 손발이 잘 맞지 않으면
수술방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된다
장비 준비 뿐아니라 수술보조자는 수술자가 요구하는 기구를 적절한 시기에
수술자의 손에 올려 놓는 것이 중요하다
수술자는 눈을 현미경에서 떼지 않기 때문이다
낮에 추간판수핵탈출증(디스크) 수술이 있었다
앞선 세차례의 수술에 있어서
수술준비와 보조자들의 술기가 만족스럽지 못한 신경외과 의사는
그날따라 주변에 폭탄을 던지는 것이다
수술방을 관리해온 내가 옆에서 보기에 불만스러운 정도로
박힌 돌들을 깨고 있는 것이다.......굴러들어온 돌이 감히
내가 관리해 온 돌들이 하얗다가 까맣게 타고
또 깨지고 여기저기 던져지고 있었다
맘이 편치 않았다
어떻게 우왕좌왕 와중에 수술이 끝났다
신경외과 의사는 수술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깍듯해 져 있었다
예의 바르고 상냥하기까지 하다
불편한 속 마음을 누르고 다음 수술을 위해 마취를 준비하는데
중요한 물품이 빠져있다
며칠전에 점검하고 준비하라는 말을 흘러 들었나? 수간호사를 불렀다
병원에 청구하였으나 물품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는 수간호사의 대답이다
순간 울컥하는 쏟구침이 내 목을 빠져 나왔다
수술방을 안정시켜야 할 내가 더 수술방의 분위기를 암흑속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차질없이 준비해서 무난히 넘겨야 할 수술이 어수선한 채 마무리 되자 마자
새로운 수술에 대한 마취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사실에 내가 폭발한 것이다
언제부터 준비하라고 말했어?
물건이 오지 않으면 독촉을 해서라도 오게 만들어야지
지금 이런 상태로 마취하면 사고나
사고나면 누가 책임지나? 누가 책임지냐구?
몰아 부치고 주변을 보니 냉기가 스물거린다
냉기마져 감도는 긴장감은
여린 여자들인 간호사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고
대꾸하는 말마져 떨리고 있었다
순간 내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려 서있는 간호사를 보자
난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장비를 든 간호사의 손마져 떨리고 있었고
평소하는 일마져 허둥대며 순서를 잊고 헤맨다
............
잠시 말을 끊고 심호흡후
준비된 장비를 재 점검하여 다른 물품으로 대체해 마취를 시작했다
이제 내가 내 돌들을 깨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그 돌 뜸새에 끼여 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한심했다 나의 관리 능력이
그런데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다니
수년째 같은 일을 반복하다 환경이 조금 바뀌자
신경이 필요 이상으로 곤두선 것 같았다
내가 이 나이 되어서도 아직 흥분을 하다니
몸 상태가 좋지 않나? 잘 모르겠는데.....
병원을 마치고 검도장으로 향한다
발걸음도 무겁고 왼 엉치도 아픈 것 같다
마음이 편치 않다.......몸도 아파온다
.......여지 없이 칼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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