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의 삼전도에서의 삼궤구고두례이후
신하의 나라로 전락한 조선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많은 백성이 청나라로 끌려 간 것이다.
양반가의 처자, 공주도 포함되었다.
그당시 청나라로 끌려간
백성이 남녀 60만명이었다고 한다.
대략 1천만명의 백성 수에 비해 60만명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중 50만이 여자들이었다.
그녀들 중 일부는 후일 고향으로 돌아와서도
환향녀(還鄕女)로 낙인찍혀,
고초를 격었다.
이후 조선이 청나라로 부터 독립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고 들어 본 적이 없다.
조선은 이후 계속 청나라의
번국으로 지내 온 것이다.
'조선은 한 때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시진핑의 말이 옳았다.
그럼, 언제 청나라로 부터 독립했는가?
고종 때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하고,
황제를 칭하면서,
중국으로 부터 독립했다.
환구단(圜丘壇: 원구단)를 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를 칭하므로서,
청나라의 속국으로 부터 벗어나
독립국이 된 것을 선포한 것이다.
독립한 나라의 연호는 광무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독립협회가 영은문을 허물고,
그 앞에 독립문을 세우게 된다.
독립문의 독립은
일제로부터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청나라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한글 '독립문'과 한자 '獨立門' 현판은
누가 쓴 글일까?
믿기 힘들겠지만, 이완용의 글씨란다.
환구단, 독립문, 독립관, 영은문, 모화관, 독립협회, 고종, 서재필, 이완용, 사바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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