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온통 세상이 강제로 단절된 상태가 1년이 넘어가면서 장기간 이어지니, 이제는 이런 상황이 당연한 일상이 된 듯하다.
출퇴근시 마스크하고, 수술방에서 마스크하며 지내니, 집에서 지내는 시간 외에는 하루종일 마스크를 하는 꼴이다. 다른 직종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여기저기 집단발생하는 것을 보면, 조그만한 방심이나 안일함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어찌 일률적으로 통제 관리 감독되겠는가.
직장이 환자가 모이는 병원이라 조심스럽게 생활하지만, 뉴스에 나왔듯이 여러 병원에서 집단 감염 사고가 있어서, 우리 병원 직원 전체가 긴장하고 있는 와중에, 최근까지 서너차례 감염자가 병원을 방문하였으나, 나름 방역과 평소 적절한 대비 상태로 집단격리 등의 불행한 사태없이, 별탈없이, 지내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집과 병원만 다니며, 주말에는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심지어 학회마저 온라인으로 대체되어 집에서 하루종일 모니터만 보아야 하는 생활이 은근 스트레스다. 뭔가 생활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외출을 계획했다.
무작정 집 탈출...
날씨가 봄날같지 않게 차갑지만, 겨울날씨를 벗어나자 주말외출을 계획하고, 간단히 실외 중심의 나들이를 시작하기로 했다. 토-일요일에 인근의 하천변 걷기와 한강공원까지 걷기, 인사동 관광과, 남대문 시장, 동대문 시장, 동묘 시장, 등, 구경과 간단한 잡화물 구매하기, 이외 시립박물관, 고궁관람, 등등을 계획하고, 마음내키는데로 당일 무작정 집을 나서기로 했다. 가다가 비오거나 너무 추우면 그냥 돌아오기로 하고...
그렇게 최근 몇주를 주말 마다 나들이를 나가게 되었는데, 먼저 집 주변을 산책하고 그후 그날 마음 내키는데로 전철을 타고 훌쩍 가는 것이 계획이다. 바람불고 비가 살짝오는 경우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바람막이를 길가 노점에서 사서 덧입고 돌아다녔다.
시장구경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 시기라 군데군데 상점이 폐업해서 좀 안타까웠으나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북적거리고 있었다. 상인들은 눈만 마주쳐도 내 코앞으로 달려 올 기세고, 이것저것 들어 보이며 가격을 외치는 위세에 어느새 난 여기저기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양손에 검정비닐 봉지가 몇개씩 들려있었다.
동묘 중고시장은 잡동사니 구경에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들고, 길거리 가판대에 상인과 사람들이 뒤엉켜 난장판을 이뤄 만든 왁짜찌끌한 소음은 이상하리만치 푸근한 느낌을 준다.
동묘시장에서 황학동시장으로 넘어가는 다리 인근에 전동휠체어를 탄채 노점 영업을 하시는 연세드신 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아픈 사람은 말만해, 동그랑 동전 반창꼬, 마구 붙여드립니다. 온 몸 아픈데는 즉효!" 무릎위에는 판매상자가 있고, 잡다한 물건들이 얹혀 있었다.
이분은 코로나 이전에 본 적이 있고, 기억이 난다. 전에 봤을 때는 조금은 조잡해 보이는 헨드폰 걸이를 가판대에 놓고 팔고 있었는데, 옆에 비슷한 연배의 남자분이 서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고 있었다. "자... 헨드폰걸이가 싸요, 싸. 요렇게 놓고 눌리면 바닥에 차악 달라 붙고, 요래조래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습니다아. 물건이 많지 않아요오... 그런데 이거 얼마에 파는거요?" 서서 장사하는 분이 전동휠체어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인에게 헨드폰걸이 가격을 물어 보는 이상한 관경이었다.
"천원..." 조그만 소리가 훨체어 상인에게서 나왔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남자가 크게 외친다. "자아~ 헨드폰 걸이가 싸요, 싸! 어제까지 하나 2천원, 오늘 특별히 하나 천원! 물건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오. 자~아 헨드폰걸이가 천원, 천원이요오." 졸지에 50% 할인 행사가 되었고, 주변에 서있거나, 막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중국산일 것이고, 경험 상 기능은 제대로 못할 것같아 보였지만, 어느새 나도 천원을 손에 쥐고 "하나 줘요." 말했다. 즉석 50% 할인품을 쓸데없이 싼맛에 사고 말았던 것이다. 베테랑 선배 상인의 원포인트 상술 교습이 효과가 좋았나 보다.
이제 손에 동그랑 동전 반창고를 든 전동휠체어를 탄 상인은 헨드폰걸이를 팔 때와 다르게 고개를 들고 주변을 돌아보며 외친다. "똥~고랑 빤창꼬가 왔어요오. 온 몸 아픈 사람은 요리 와! 마구마구 붙여드려요오." 휠체어에 앉아 멀리 이동하지 못하지만, 목소리 만큼은 멀리까지 쩌렁쩌렁하다.
내가 '동그랑 동전 반창고'를 샀을까? 안샀을까?
옆에 있는 태극기 쪼끼에 해병대 마크 모자를 쓴 연세드신 분이 외치는 소리에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자아 칼갈이가 왔어요오. 칼이나 가위를 끼우고 요래요래 문지르면, 무딘 칼이나 가위도 바로 날이 섭니다아. 어제까지 2천원, 오늘 떨이로 천원에 팝니다. 자아 칼갈이가 왔어요오. 오늘 마지막 떨이~. 천원에 팝니다아. 단돈 천원..."
내 손에는 어느새 천원이 쥐어져 있었다. 가격을 말안하는 동그랑 동전 파스는 천원짜리 칼갈이에 밀렸다.
집에 가져가면 몇번 쓰고 버릴 것같이 불량스러워 보이는 물건이지만, 싼맛에 또 지르고만 것이다.
다음에는 어느 물건이 2천원짜리에서 천원으로 할인 판매될지...
또 조만간 동묘시장에 갈 것같다.
가는 길에 있는 '한마리 4천원 두마리 7천원 세마리 만원' 통닭구이집에서 닭한마리도 먹어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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