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코로나와 봄이 있는 주말 III

夢乭 2021. 5. 3. 17:33

어제 침침한 지하실에서 느낀 우중충한 기분은 비오는 날 차가운 날씨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어제 날씨와는 달리 제법 화창한 기운이 돈다. 새벽녁에 비가 내려서 궂은 날씨를 예상했는데, 요즘 일기예보는 정확한 편이다.

요즘 주말이면 나들이를 계획하던 터라, 아침에 눈떠자마자 오늘 행선지를 정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채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경기도의 '경기'는 수도 '경성'의 '인근'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과, 대부분의 왕릉이 수도 한양 도성 밖에 위치하나, 경기도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예외적으로 강원도로 쫒겨가고 후에 사사되었다는 단종인 경우가 있다. 단종 묘에 대한 것은 속초 여행시 투어 해설사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하루 일정으로 생각한 것이 세종대왕의 왕릉이었다. 몇년전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지고 이순신 장군 동상보다 더 광화문 광장의 랜드마크(이크, 대표적 표지물)가 된 후 한번쯤 여주에 있는 왕릉(영릉)과 용산에 있는 한글 박물관,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상을 연결하는 코스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코스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단순히 여기저기 다니는 것보다 좀 더 단순한 경로를 만들어 움직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누워서 헨펀으로 여주 영릉의 위치를 찾고, 일단 그곳에서 시작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앞으로 일정이 바뀌면 바뀌는데로 현장에서 대처하기로 하고 일어나 물건들을 챙겨 백팩에 넣었다.

집 근처 전철역에서 분당선을 타고, 이매역에서 경강선으로 갈아 탄 후 세종대왕릉역에서 내려 지역 버스로 환승하여 가기로 경로를 정했다.
그런데, 이매역에서 환승 후 경강선 전철 안에 부착되어 있는 광고판이 눈에 들어 왔다. 여주시에서 운영하는 시티투어 광고였다. 코스는 적당하다고 생각되었고 비용도 5000원으로 가성비가 좋았다. 그래서 계획을 바꾸어 여주역에서 시티투어를 시작하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탑승한 투어 버스는 첫차였고, 내가 승차하자 곧 바로 출발했다. 승객은 나 혼자였고, 운전자 기사와 보조 기사가 전부였다. 기사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제는 첫차 탑승객이 한명도 없었단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다들 자가용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운행하는 기사분들은 통근버스 기사분들인데, 은퇴가 얼마남지 않았으며, 4명이 알바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코스에 2명, '나'코스에 두명씩인데, 지금 두 사람은 충청도와 강원도에서 각각 왔고, 코스따라 버스를 운행하는 것 말고는 관광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 해설은 못한다는 것이다.
"저도 승객분과 똑 같아요. 잘 몰라요. 어리버리해도 이해하세요."

중간에 연세든 노부부가 탑승하고, 곧 세종대왕릉 정류소에 도착했다. 대략 2시간 후면 같은 자리에 버스가 올 것이다. 그사이에 관람을 마쳐야 하는 것이다.

바쁜 마음으로 세종의 영릉 관광을 진행하고, 효종의 영릉까지 돌아 본 후 정류소로 돌아 오니, 1분여 정도 시간이 남았다. 아슬하게 도착한 것이다.

다음 행선지로는 막국수 마을로 정하고는 점심을 그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막국수 마을 정류소에 내려서 눈에 띄는 '천서리막국수' 큰 간판을 보고 다가가니, 문밖까지 줄을 선 손님들을 보고 그냥 돌아섰다. 옆집 생선구이집으로 갔으나, 2인상 이상만 생선구이가 된다는 말에 돼지김치찌개로 한끼 때웠다. 먹는게 생각대로 잘 안되는 것을 여러번 여행 중에 격어봐서 별로 실망하지 않았지만, 식사후 동네 구경 삼아 산책하는 중에 뒷길에는 온통 막국수집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첫번째 본 가게 바로 옆에 있는 집이 소문난 별미집이라는 것이다. 한 그릇 먹고 싶었으나 버스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정류소로 향했다.

시간이 되니 관광버스가 도착했는데, 또 승객이 나 혼자였다. 기사분은 달랐지만, 승객의 승하차 정보를 센터와 공유해서, 중간에 하차한 승객인 나를 픽업하기 위해 빈 버스를 돌린 것이다. 좀 미안하기도 했지만 외진 곳이고 대중 교통편이 없는 곳이라 관광버스가 아니면 내가 곤란한 지경인 것이다. 그리고 시에서 세금으로 운영하니 기사분도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어서 불편한 마음이 좀 덜했다. 다음 정류장인 신륵사에 도착하여, 사찰 관광 후 명성황후 생가터에 갈 예정이라고 말하니, 기사분이 관광 후 탑승할 시간을 찾아서 알려 준다. '1시간 후라...' 빠듯한 관광 시간이다.

급한 마음으로 후다닥 돌아 보니, 절의 특징이 많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산속이 아니고 평지에 절이 있고, 대웅전 맞은 편 풍경으로는 황포돗대 유람선이 떠있는 강이 보이며, 왼켠으로는 나무가지 사이에 관세음보살 형상이 보인다는 안내문이 걸린, 주변에 쳐진 금줄에 소원성취 종이가 잔뜩 걸려있는 은행나무 고목이 특이했다. 봉미산신륵사, 뒷산이 봉미산이려나.

바쁜 마음에 서둘러 돌아 오니 오히려 10분이 남았다. 곧 명성황후 생가터로 향하는 투어버스가 도착했다. 승객은 나 포함 세명이었는데, 중간 기착지인 수목원에서 중년 여성 3분이 버스에 올랐다. 모두가 생가터가 마지막 코스이고, 이후 여주역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예정대로면, 버스는 우리를 내려주고, 한시간 후 다른 버스가 와야 하지만, 이후에 탑승 관광객이 없는지, 센터와 통화한 기사는 우리에게 생가터 정류소에서 기다릴테니 관광하고 오면, 바로 역으로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다. 전원 찬성하고 20분 만에 관광 후 돌아 오기로 정하고 차에서 내렸다.

복원한 생가터는 특별한 감성을 느낄만한 것이 없었고, 인근에 있는 '감고당'의 관람이 좋았다. 다른 한옥에서 보기 어려운 특이한 '중간채'는 정말 처음보는 것이었다.

짧은 관광 시간이었지만 적당했다. 기사분도 시간을 줄여서 좋았고, 관광객도 편리하게 되어 좋았다. 아줌마... 음 연세든 여사분들의 수다 중... '완전 대절버스네..'라는 말과 '오늘 수목원이 제일 마음에 든다.'는 말이 귀에 들어 온다. '다음에 오면 수목원에 가 볼까'하는 마음에 물어 보았다. "수목원이 그렇게 좋아요? 대게 수목원은 예약제로 운영하고, 인원제한을 하던데요. 입장료는 얼마예요?"
"예약 안해도 되고요. 인원 제한없어요. 그리고 공짜예요."
'공짜'라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 아닐길...

여주역에서 버스에서 전철로 갈아 탄 후 고민이 생겼다. 용산의 한글 박물관은 포기하는 수 밖에 없고, 여주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바람에 광화문까지 가서 다시 귀가하려면, 좀 피곤할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쩌랴, 의미는 크게 없지만 개인적으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을 오늘 나들이 종점으로 정한 이상, 마무리를 그곳에서 하고 싶었다. 결국 광화문역에 내려서 동상을 찾아 광장으로 올라갔다.

길 건너 동상이 보이는데, 동상 앞에는 일련의 사람들이 시위 중에 있었다. 마주보이는 미대사관을 향해 마이크로 시위 연설하는 중이었다.
가까이 가니, '북핵이 있어야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보장되고, 미국만이 핵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제국주의적 행패...' 소리가 들린다.
마침 내 옆을 지나는 30중반의 사내가 한 마디 한다.
"어이구, 철딱스니없는 새끼들."
지정된 시위 시간이 되었는지, 곧 시위대는 철수를 하고, 옆에 있던 경찰관들도 자리를 뜨고 있다.

동상 앞에서 인정 사진을 찍고, 바로 버스를 타고 을지로의 돼지국밥집으로 향했다. 이 근처에 오면 부산 돼지국밥이 생각나서 들러는 집이다. 버스에 내려 골목길을 타고 돌고돌아 도착한 국밥집.
문닫았다.
일요일은 쉬는가보다. ㅠㆍㅠ

오늘은 밥 먹는 것 빼고는 다 잘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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