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기예보에서 3mm 비가 온다고 하더니,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빗방울이 흩날리면서 하늘이 우중충하다. 오늘 또 다시 여주로 향한다. 15일이라 여주 5일장이 서는 날이다. 주말에 5일장 맞추기가 쉽지 않은 편인데, 마침 토요일에 5일장 날짜가 맞추어 진 것이다. 저번에 다녀온 지 얼마되지 않았으나, 장터 구경과 막국수 한 그릇, 수목원 탐방이 빠져있어서, 겸사겸사로 다시 여주로 가기로 했다.
아침을 먹으면서 시티투어 시간표를 점검하고, 스케쥴을 짰다. 서두르지 않도록 시간표를 연결했지만, 현장에서는 어떻게 바뀔지 몰라, 가급적 시간표 이외의 동선은 제외하고 간단하게 코스 순서를 짰다.
하지만, 여주역에 내리자마자 스케쥴이 어긋나고 말았다. 조금 서둘러 출발한 것이 여주역에서 투어 스케쥴을 앞당기게 된 것이다. 시티투어 버스 '나'형(10:30) 대신에 '가'형(10:00)을 타게 되었다.
출발하는 버스에서 급하게 일정을 바꾸었다. 순서는 같되, 막국수촌에서 일정을 바꾸어 '파사성' 탐방을 추가로 넣었다. 결론은 막국수촌에서 2시간을 머물게 되는 것이다.
오늘 여주역에서 출발하는 버스에는 승객이라고는 나와 연세드신 노인 1분, 그리고 기사와 보조 기사가 모두 였다. 비가 오니 관광객이 없나 보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않아 첫 정류장인 '여주5일장'에 다달았고,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너 장터로 향했다. '여주한글시장'이 상설시장이고 5일장날에 맞추어 시장안에 장이 겹으로 서는 형태였다. 그래서 시장 안의 길이 복잡하고, 상대적으로 좁게 느껴졌다.
양옆으로 가게들이 있으며, 가운데 도로에 거리좌판대들이 길을 따라 들어선 것이다.
현대식 가게와 거리난장이 어울어져 왁자찌끌 했다. 비가 오는 중이고 나름 오전 이른 시간에 장터가 이정도라면, 날씨 좋은 평상시 같으면 대단한 풍경일 것이다.
'여주한글시장'이라는 이름답게, 군데군데 길 한 가운데 마련된 세종대왕 동상들이 있는데, 어린 세종 동상이 시장의 마스코트였다. 반면에, 거리 가판대에 둘러싸인 나이든 세종은 미역을 홍보하는 강제 노역(?)을 하고 있었다.
"단골인데 좀 깍아줘야지."
"단골이라도 그렇게 팔면 난 남는거 없어요."
지나가는 귓등으로 흥정소리가 들린다. 할머니 손님이 막무가내로 삿대질에 윽박 중이고, 상인은 손사래 치면서 달래는 중이다. 장터니까 볼수 있는 광경이지, 정가표가 붙은 백화점에서 어디 그런 흥정이 되겠나.
때마침, 길가 잡화점 앞에 진열된 모자 더미 중에 마음에 드는 모자가 눈에 띄었다. 모자 앞에 가까이 서서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며 보고 있으니, 가게 주인이 다가 온다.
"맘에 드는 것있으면 골라 보세요. 싸게 드릴께."
지금 쓰고 있는 모자가 마음에 들지 않은 차에, 귀가 쏠깃해지며 마음이 동했다. 몇차례 시장 구경을 다니면서 보아 왔던 물건들의 가격이 떠 올랐다. 그리고, 흥정을 해서 가격을 깍아 보기로 했다. 대략적으로 예상 가격은 1만5천원인데, 1만2천원까지 흥정해 보고, 성사되면 사기로 생각을 굳혔다.
'일단, 가격을 물어보고 시작해야지.'
"사장님, 이 모자 얼마예요?"
베이지색 여름용 챙모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가게 주인은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정글 모자를 슬쩍 보더니, 가볍게 가격을 부른다.
"만원만 주세요."
"......"
흥정은 없었고, 그냥 돈을 꺼냈다.
주인이 내 모자를 보고, 날 엄청 불쌍하게 본 모양이다. 즉시 모자를 바꿔 썼다. 정글모자는 베낭에 구겨 넣었다.
'나'형 버스 시간에 맞추어 정류소에 가니, 곧 버스가 왔다. 장터는 '가'형과 '나'형의 공통 정류소라서 서로 환승할 수도 있다. 버스에 오르니, 승객이 나 혼자다. 막국수촌에 간다고 말하고, 이른 점심으로 막국수를 먹고, '파사성'산성 탐방도 할 예정이므로, 막국수촌에서 하차 한후 2시간 뒤에 버스를 탈 계획이라고 말했다.
버스는 한참을 달려 막국수촌에 도착했다.
"길 건너 저 빨간색 정류소에 있으면 됩니다. 2시간 후에 내가 올거예요."
버스기사는 2시간으로 힘들거라는 말도 남기고 떠났다.
얼마전에 봤던 막국수집을 지나, 맛집으로 소개받은 가자미 식혜 막국수집으로 곧장 갔다. 점심을 먹고 산성을 왕복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서둘렀다.
막국수 맛은... 음... 다른 막국수를 같이 먹어 봐야 비교를 하지... 뭐든 호불호가 있으니...
산성 탐방이 초행길이니 네비게이션에 의존해 길을 찾았다. 10여분 걸어 왼쪽으로 방향을 꺽어 산으로 향하자 도로를 벗어난 네비게이션에 등산로 표시가 사라져, 겨우 주택가 틈에서 어렵게 길을 찾았다. 다듬지 않은 흙길에, 가파른 길을 꾸불꾸불 올라가니, 가벼운 산행이 아님을 알았다. 중간에 표지판이 없었으면 길을 잘 못 들은 줄 알았을 정도였다.
숨이 턱에 닿을 때쯤 산성의 일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 남한강을 한눈으로 내려다 보는 정상이 나타났다.
정상의 팻말을 보니, '동문지', '남문지' 방향 표시가 있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그 쪽들이 파사성 진입로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올라 온 길은 다듬지 않은 산길이고, 지금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는 길은 나름 정비된 산책로였던 것이다. 나만 엉뚱하게 뒷길로 힘들게 올랐었다.
'기계가 뭐든 정확하게 하는 것은 아니야.'
오늘은 선택이 잘 못된 방향으로만 이어진다.
하산은 남문지로 방향을 잡았다. 길은 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쉽게 하산했으나, 산성을 오를 때 험한 길 탓에 신발 밑창이 떨어져 너들거렸다. 4~5년은 처박아 놓은 등산화라 싹았던 신발이 고생끝에 파탄이 난 것이다. 신발끈으로 응급조치를 하고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약속된 시간에 버스가 왔고, 다음에 정차하는 신륵사 정류소에서 '가'형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내렸다. 수목원으로 갈 예정이었다. 대략 50분 가량 대기 시간이 있어, 신륵사는 전에 관광을 한 곳이라 건너 뛰고, 주차장 바로 옆에 있는 여주박물관을 방문했으나, 내부소독 중이라 '3시 이후 입장 가능'이라는 표식이 있어서 포기하고, 근처 초계국수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국수 맛은... 뭐든 호불호가 있지...
덕분에 점심을 두번 한 셈이다.
"수목원 간다고요? 수목원에 도착하면, 한시간 후에 정류소로 나와야 해요. 그때 막 차가 올거예요."
버스에 오르자마자 운전기사가 말했다.
이번에도 승객은 나 혼자다. 결국 한시간 뒤에 나때문에 빈차를 한대 더 돌린다는 의미였다.
늦게 정류소에 돌아가면 곤란해 질 세라, 서둘러 수목원을 바람처럼 휘익 돌고 말았다. 즐길 틈이 없었다. 수목원 정류소로 돌아온지 2분만에, 정확한 시간에 버스가 도착했다.
"여주역으로 갑니다."
역시 승객은 나 혼자였다.
집으로 돌아 가는 길에, 수서역 전철 환승 구역내 상점에서 등산화를 구입했다. 가게 앞에 펼쳐 놓은 신발 중에 등산화가 마침 지나가던 내 눈에 띈 것이다. 신발 앞에는 볼펜으로 쓴 듯한 '20,000원'이 쓰여진 A4용지가 놓여있었다. 내가 신발을 살피는 것을 본 여주인이 내게 다가와 말한다.
"5만원 짜린데. 낼모레 가게 정리하니까, 2만원에 내 놓은 거예요. 싸게 드리는 거예요."
오늘 물건 구입은 가격 흥정없이, 싸다는 말에 덜렁 주워 담는 것으로 끝이다.
콩나물 값도 깍는다는 아줌마들의 흥정 실력을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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