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91 세 고관절 골절 환자의 수술이 끝나고 퇴근할 때 온 몸이 나른해 졌다. 환자 나이도 그렇지만 30 년전 심장 스텐트를 삽입한 고혈압 환자인데, 항응고제까지 복용하는터라 수술 결정에 있어서 주치의의 고민이 많았던 경우다.
최근 의료 대란 때문에 환자 보호자가 대학 병원으로 모시지 못해서 본원으로 내원한 것이다. 이전에는 당연히 인근 대학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요즘 상황으로는 보낼 대학 병원이 없는 상태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입장이었다.
8 월 14 일에 입원을 하고 수술을 위해 항응고제 투약을 끊은 후 16 일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항응고제 투약을 2 일 정도 끊는다고 수술이 가능한 정도는 아니나 환자의 상태가 출혈을 무릅쓰고 수술을 해야할 상황이라 수혈할 혈액을 준비하고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환자 나이가 70 세가 넘은 경우에서 마취 위험도를 따지자면, 마취과 의사의 입장에서는 심장수술 마취와 비슷하다. 하물며 심장 관상동맥 협착으로 스텐트를 삽입하고 항응고제와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는 91 세 환자의 마취는 끔찍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테이블 데스(수술 도중 사망을 의미) 가능성을 보호자에게 설명했겠지요?''
마취하기 전에 보호자 동의서를 확인하면서 주치의에게 물었다. 주치의는 말보다 고개를 끄떡였다. 현재로서는 대학 병원이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호자도 알고 있기 때문에 수술 결과에 가타부타 할 입장도 아니었다. 그리고 수술시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이송할 병원도 없다는 것이 병원 측도 힘든 입장이다.
요즘 분위기는 살벌하다. 최근에 ''백살도 안 됐는데..., 수술 제대로 한게 맞아요?''하며 자식인 보호자가 모든 진료 기록을 카피해 가는 경우도 있었다.(이 말은 실제 어느 보호자가 한 말로 의사 게시판에 올라 온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래서 요즘 수술하는 병원들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술은 아예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대학병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으나, 상급 병원의 위치로서는 고위험 환자를 무작정 내칠 수만은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노인 환자를 수술하겠다고 마취해 달라는 주치의가 미워 죽을 지경이다.
얼마전에 TV토론에서 나온 유명한 말이 있다. 의사들이야 알지만 일반인들은 관심도 없을 수도 있겠다. '' 환자가 죽었는데, 의사가 아무런 처벌도 안받아요?''
곧 사망할 환자도 의사가 손을 써서 무조건 살려내야하고, 반대로 환자가 사망을 하면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토론 패널의 주장이다. 의사가 최선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환자의 사망마저 의사에게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고, 진료 기록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파헤쳐 조그만한 과실이라도 있으면 형사 처벌을 하겠다는 말이다. 그는 정부 의료 정책에 관여한 사람으로 의료분쟁 중재위원회에 적을 둔 사람이다. 지금 정부의 의료 대책이나 정책이 어떤지를 잘 대변한 말이다.
그러면서 덤으로 민사 소송도 생기면 의료 분쟁에 역인 해당 의사는 나락으로 빠지는 거다. 요즘 소송 판결하는 재판관도 환자의 눈물을 딱아주기 위해 엄청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서 의료 소송으로 필수과 의사들은 의료 분쟁이 발생하면 평생 벌은/벌 소득을 순식간에 날릴 것은 뻔하다.
이런 정부의 의료 정책과 사회 분의기에 주로 생명을 다루는 필수 바이탈과의 기피가 만연하면서 차츰 붕괴가 일어나고 있었고, 의대 증원과 동시에 정부의 필수 의료 패케지에 대한 법 제정에 전공의가 필수과를 수련할 이유가 없어 이심전심으로 대거 사직한 것이 현재 일어난 의료 대란이다.
전공의들은 이제 돌아오기 힘들다. 억지로 수련해 봐야 수련 후 얻을 이익이 전혀 없기 때문에, 주당 100 시간씩 뼈를 갈아 넣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냥 일반의로서 안전한 분야에 안주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엄청나다.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다.
그동안 전공의들을 갈아 넣어 가면서 유지한 의료를 정부는 개선과 보상보다 더 오래 더 싸게 유지하기 위해 전공의들을 더 뽑아 부릴려고 의대 정원을 증원했다가 낭패를 맞은 것이다. 학생들과 전공의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이런 혼란이 지속될 것으로 생각 된다.
잠시 딴 이야기이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요즘 응급실을 지키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줄줄이 사직을 하고 있다. 전공의가 아니라 전문의, 대학교수가.
응급 환자의 사망율이 높으면 높을 수록 형사 기소나 의료 소송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예상 가능하다. 대학병원 응급실도 응급 의료 인력이 모자라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는 등 파행을 해도 정부와 국민들은 관심도 없는 듯 하다. 대신 응급피부과, 응급통증과, 응급미용과도 차후에 우후죽순처럼 생기지 않을까.(이런 씰데없는 농담은 하면 안되는데.)
요즘 의사들이 의료 분쟁 위험이 적은 피부미용이나 통증 물리 치료에 몰리는 이유가 그냥 있는게 아니다. 요즘 사직 전공의들이 주로 취직하는 곳이 이런 분야들이다.

참, 노인 마취에 대해 이야기 중이었지. 이 노인의 마취에서 주의해야 할 요소들을 주치의에게 말했다.
1. 일단 항응고제의 잔여효과로 수술 중 출혈인데 급한대로 혈액응고 촉진제를 투여하여 출혈을 줄여 볼 계획이나 환자가 항응고제를 투여하고 있는 목적을 없애는 것이라 차후 심장혈관의 혈전 발생 위험도가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노인의 심혈관계의 특성 상, 혈관의 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고혈압이나 저혈압이 발생한다. 그래서 마취로 인한 혈관 확장으로 일시적인 저혈압이 발생하면, 심장은 보상 작용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데, 노인들은 이 기전이 쉽지 않다. 그래서 저혈압에 빠지면 빨리 대처해야 할 이유이다. 만일 심장이 잘 반응해서 일을 열심히 한다고 쳐도 이 환자는 관상동맥 문제로 심장 근육 자체에 혈액 공급이 제한되어 있을 수 있어서 과도한 부하가 심장에 걸릴 경우 심장이 무산소 운동에 빠져 심장 경련을 거쳐 심정지로 진행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환자를 마취한 후 즉시 수액이나 혈액을 급속 투여하거나 혈관을 수축시키는 승압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여 저혈압을 막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다. 환자는 수술방에 오기 전에 고혈압 약을 복용했었다. 첩첩산중이다. 그래서 혈관을 수축시키지만 심장 박동을 촉진 시키지 않는 약(페닐에프린)을 미리 준비하라고 지시를 한 후에 마취를 시작했다.
3. 더 문제는 수술 후 환자의 관리이다. 본원은 중환자실이 없기 때문에 일반 병실에서 관찰해야 한다. 심전도, 혈압, 출혈 상태, 의식상태 등을 시간 단위로 관찰해야 하는데, 상급 병원 만큼 장비가 없어 응급시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
이런 모든 것을 무릅쓰고 수술하려는 주치의가 강심장이라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마취 상 주의점을 설명하고 척추마취를 시행했다.
주치의가 병원장이라서 내가 월급이라도 받으려면 똥줄 타면서 마취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II
추가적으로 고관절 골절 환자를 꼭 수술을 해야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겠다. 젊은 사람이야 당연하지만, 고령의 노인의 경우도 해야 한다. 일단 통증이 극심해서 노인이 견디기 어렵고, 대소변 관리를 위해 자세 변동시 통증이 환자를 괴롭힌다. 고관절 부위라 출혈은 상당해서 저혈압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골절 부위의 전위를 막기위해 아래다리에 추를 달아 견인하는 장비를 사용하므로 침대에 계속 누워 지내야 해서 욕창이 쉽게 생긴다. 말하자면 이런 악순환 과정을 거치면서 노인의 수명에 악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나마 수술을 하는 것이 생활과 여명에 도움이 된다.
III
집에 들어서자마자 씻고 들어 누웠다. 피곤하지만 잠도 쉬 들지 않는다. 매일 이런 환자를 마취해야 한다면 빨리 은퇴하는 것이 만수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나마 대학병원이 아니기에 간혹 하는 고위험 환자를 마취하게 되는 것이고, 그 수술을 마치면 마취과 손을 떠나기 때문에 힘든 시간을 곧 잊어 버리고 다른 간단한 마취를 하면서 소소하게 지내는 걸 낙으로 삼는 것이다.
평소 퇴근 후 운동(검도)을 하는 이유도 낮 시간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 평소 동묘 시장, 동네 한바퀴 구경이라던가 또는 당일 치기 여행을 해 보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저녁 운동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주 중에 운동을 빡세게 하고나면 주말에는 거의 집에서 시체처럼 누워서 지냈다. 여름 휴가를 가지 않고 주말에는 집에서 지냈는데, 이유가 처음에는 수시로 비가 와서 나가기 귀찮았고, 나중에는 더위 때문에 마실을 하지 않았다. 늙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그냥 드러 누워 지냈다.
힘든 마취 때문에 퇴근 후 바로 자리에 누운 채 핸드폰을 두들기다가 작년에 부지런히도 다녔던 당일 여행을 생각하고는, 그 여행사의 홈페이지에 들어 갔다가 땡처리 여행 광고를 보았다.
17 일 삼척 장호항 당일 셔틀 상품이다. 내용이 모객을 한 후 장호항에 데려다 주고, 자유시간으로 각자 5 시간 30 분을 보낸 후 차로 되돌아 오는 것으로, 가이드는 없고 운전 기사만 있는 상품이었다.
땡처리라 가격이 일반 회원에 비해 싸기도하고(19,900 원), 10 명 한정으로 선착순 예약을 받는다고 하니, 결정을 빨리 해야 될 상황이었다. 이미 오후 8 시가 넘어서 예약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었다.
마침 일기예보에도 비 소식도 없고, 서울에서 장호항을 가기위해 서울에서 삼척까지 고속 버스 요금을 알아보니, 관광 셔틀 요금이 고속 버스 편도 값 정도 수준이라 그냥 예약 신청을 했고, 15 분 후 여행사로 부터 예약 확정과 입금 요구을 알리는 문자가 왔다.
후닥 입금한 후 장호항의 맛집을 찾아보니, 여러 맛집이 있으나 눈에 띄는 문어 요리 음식점이 있는데, 문어 비빔밥이 그 집의 별미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어 비빔밥을 먹으러 장호항으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 투어는 노인 수술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핑게로 일을 만든 것 뿐이다.




IV
17 일 아침 약속 장소에 도착한 버스에서 문제가 생겼다. 전날 밤 늦게 신청한 이유 때문인지, 버스 기사분의 자료에는 내 이름이 없어 3 분간 옥신각신하다가, 일단 버스를 타고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여행사도 아침 7 시에는 전화를 받지 않아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여행이란 이런 돌발이 항상 일어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오래 전에 중국 단체 여행 도중에 유명 여행사를 통한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탈 야간 열차에 예약한 침대칸이 없어서 당황한 적이 있었다. 중국 철도의 잘못이지만, 특유의 배째라 식 대응에 어쩔 수 없이 일반 침대칸으로 뿔뿔이 흩어져 밤새 갔던 적이 있었다. 이후 여행 중에 돌발 상황이 생기면 '이런 것이 여행이다'라고 위안을 한다.
양평 휴게소에서 쉬면서 기사분이 여행사와 통화 후 확인을 했다고 한다. 일이 생기면 해결도 어떻게든 되는게 여행인 것이다.

운전 기사분은 10 시 30 분이 도착 예정 시간이라고 말했으나 11 시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주말은 여지 없다.
































































가져간 수영복은 짐만 되었다.
그래도 여행은 즐거웠다.
장호항의 문어 숙회는 둘이 함께 올 때 같이 먹기로 하고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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