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늦은 지인 딸 결혼식을 마치고 산책을 나섰다.
동국대역 인근이라 자연히 발길이 충무로 쪽으로 향한다.
무작정 걷는 걸음이라 한가해 보여도, 눈은 주변을 살피느라 바쁘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거리는 많이 변해 있어 새로운 모습이 낯설다.
인쇄 거리부터, 명보극장 사거리, 서울백병원, 명동, 시청 앞, 광화문 광장 등등을 지나 경복궁역까지 걸었다.

중구청이 이랬던가.

80~90년대를 보아 온 인쇄 거리와 비교해 보면, 이제 흔적만 남았다는 느낌이다. 논문 출판을 위해 들락거렸던 인쇄소 골목은 흔적을 볼 수 없고, 그 골목은 아기자기한 술집들로 바뀌었다고 한다.


명보극장 사거리에 선 조형물은 영화제를 의미하는지... 대종상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측해 본다.

명보극장 사거리에 새로운 건물을 보았다. 옛 충무로 영화 시절을 이 사거리에 박제하고 여전히 영화계의 중심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퇴계로의 대한극장이 문을 닫은 후 1세대라 할 만한 개봉 단관 극장들은 없어졌다.



건너편에 평래옥이 보인다. 사거리를 지나면 백병원이다.

한때는 백병원 부속 사무실들이 있었다. 사직서를 내기 위해 들어갔던 기억이 가물 거린다. 몇층이었더라?

출퇴근을 정문이 아닌 지하 주차장을 통해 다녔었다. 지금은 구조변경을 했나 보다. 장례식장이라니. 넓은 구조가 아닌데.

2호선 을지로 3가역에서 병원까지 다니던 골목길. 그야말로 인쇄소 골목으로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하루 종일 났었다.

백인제, 백병원, 인제대학, 無主空山의 재단



파인힐 레스토랑은 투썸으로 바뀌었네

YMCA

건널목 너머 있었던 중앙극장도 화려한 건물로 바뀌었다. '더록', '히트', .. 등등 의국원들, 과장님들과의 단체 관람 추억이 떠오른다.















건물 형태를 봐서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없다. 화려한 거리에 숨겨져 눈에 띄지 않았던가 보다.







시청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오늘 광화문 광장의 시위로 교통혼잡이 극심했다고 한다.
결혼식장에 왔던 사람들이 치를 떨었다.
요즘 수시로 집회를 한다고 한다.
대신 일요일은 쉬려나?
직업이 집회와 시위인 사람들은 쉬는 날도 없나?


국립극장 옆 광장에서 한 단체가 인터넷 방송 중이다.

서울의 '중심대광장'은 이승만 시절에 만들어 졌으며, 시민들의 자유로운 토론을 법으로 보장하도록 하였다 한다.
그래서 이 광장에서는 시위나 토론을 소란으로 방해하거나 저지하는 행위는 법적 처벌이 있을 수 있다는 집회자의 말이 있다. 몇몇을 고발했고, 금융치료도 했단다.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자신의 초등 5학년 아이가 있는데, 애가 다니는 학교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를 수 있도록 가려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예 학교에서 애국가 자체를 부르지도 않는다고 강변한다.
"선행학습으로 좋은 대학 입학하고, 대기업에 입사하면 뭐합니까? 기업 비밀 빼돌려 중국에 팔아 먹으면, 그 뭡니까? 그게 바로 '매국노'아닙니까?"

박근혜 탄핵에 관련 된 정치가 이름들을 하나하나 부른다. 중간중간에 주변 사람들이 '반역자'라고 추임을 넣는다.

초대받은 정치가인가 보다. 518법을 기점으로 증가하는 이상한 법들을 폐기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요즘 대두된 '혐오 방지법'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너무 많다고 한다.
그냥 느낌에는 '국민입틀막법'이라고 말하는 것같다.

한글... 훈민정음 창제하신 세종대왕

'노비종모법'을 만들어 이 땅에 노비로 가득 채우신 성군 세종.
조선말 인구 구성은 양반이 10% 전후이고 사노공상 인구는 그럭저럭이라면, 노비 숫자가 최소 40%에서 최대 60%에 이르렀다는 학계의 추산이다.
그럼 그럭저럭한 평민은 30~50% 전후가 되었다는 것인데, 요즘 집집마다 족보를 들고 흔들며 다들 양반 집안이라고들 하니, 평민과 노비들의 후손들은 모두 산에 끌고가 한꺼번에 묻었거나, 전쟁통에 일시에 전몰했었나 보다.
그 노비들의 자식들이 현대에 와서 신분 세탁을 하고 세상에 나와 양반 자손처럼 행세하며 세간을 어지럽힌다.
어릴 때 학적부나 주민등록 등본에 적던 원적지 칸이 지금은 볼 수가 없다.
몇년 전에 탈북민을 마취하면서 물어 보니, 성씨는 사용하지만, 본관이나 무슨무슨 파, 등등 족보에 관한 것은 모른다고 한다. 오래전에 없어진 것이다.
조만간 우리도 족보는 '개족보'로 취급하고 그냥 평범한 국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성씨는 부모 성씨를 물려 받겠지만, 고종사촌과 이종사촌을 구분 못하는 세상에서는 '양반'이나 '쌍놈'은 욕설로 흔적을 남길 것이다.



복원한 월대는 울타리로 보호를 해야만 하나. 저녁에도 낮처럼 그냥 두면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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