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단상들

섬집 아기

夢乭 2025. 8. 10. 00:37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가사는 단순하지만 잔잔한 곡에 어울려 가슴을 흔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자장가를 들으면 저절로 눈시울이 적셔진다는 말을 한다. 심지어 자장가를 듣고 있는 애들도 울음운다는 말도 있다.

1940~50년도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세간의 말을 듣고 찾아보니 한 시인의 목격담을 시로 쓴 것을 시인의 고향 선배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는 것이다. 세간의 말이라 믿기는 어렵지만 마치 정설처럼 퍼져 있다.

그 전설같은 세간의 이야기를 가사와 엮어서 짧은 이야기 구도로 새로 만들어 봤다. 즉 창작이라는 것이다. 그래봤자 세간의 이야기일 뿐이다.

.........

고향이 함경도 바닷가인 한 시인이 전쟁 후 귀향을 하지 못하고 먼 남해안 바닷가에서 교편을 잡으며 잠시 머문 시기의 이야기이다.

여느날처럼 백사장을 바라보며 고향을 생각하고, 난리통에 급하게 헤어진 후 만나지 못하는 부모님과 손아래 여동생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 있다가, 멀리 선창에 모인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서두르는 모습이 궁금해서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2일전 오후에 바람이 갑자기 거세진 날, 새벽에 바다로 나선 고깃배가 소식이 없어진 후 어부들의 가족들은 거의 이틀을 선창에서  혼절하며 기다렸으나, 몇 시간 전에 해경으로 부터 사고 전말을 듣게 되었고 모두 몸부림 치며 통곡하는 중이었다.

여섯 명의 어부들 중 가장 나이 어린 막내 어부의 아내는 사람들의 이목에도 불구하고, 흩트러진 머리로 땅바닥에 주저 앉아 온 몸을 흔들며 울고, 그녀의 등을 감싸고 있는 포대기에는 여듧아홉달 되어 보이는 아기도 느슨해진 포대기 틈에 흔들리며 울고 있었다.

밤새 잡은 고깃배가 새벽에 선창으로 들어 오면, 경매가 시작되는데, 이때 어부들은 생선 분류가 끝나고 남은 잡어는 주민들에게 싸게 팔거나 나누어 주기도 한다. 잡어를 싸게 구입하거나 얻어가는 사람들은 마을에서 음식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찬거리로 사가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는 잡어를 선창 옆 골목 모퉁이에서 급하게 손질한 후 길가 좌판에 올려 장사를 하기도 한다. 이렇듯 배 들어오는 날 새벽에는 선창 옆에 도깨비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장이 서면 해산물 뿐 아니라 근처 동네 사람들도 밭 농작물이나 나물 잡곡 등 부스러기를 장에 들고 나온다. 도깨비시장은 물물교환하듯이 거래가 끝나면 순식간에 파장이 된다. 그리곤 금방 인기척이 없는 휑한 시장 바닥만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아침 일찍 해안선 모래밭이나 뒤 산 언덕을 따라 산책을 하고 귀가 길에 선창 도깨비장에서 찬거리로 좌판에서 손질된 잡어를 사서 가곤 했다.

최근에는 길가 좌판을 깐 아낙들이 듬성듬성 띄어 앉아 지나가는 시인을 불러 붙잡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을린 얼굴에 아직 어린티가 나는 새댁의 좌판에서만 잡어를 샀다. 어느듯 잡어 봉지를 건내는 새댁의 손에는 고생이 핡히고 간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새댁은 마음이 바쁘다. 새벽 일찍 길을 나섰고, 안면 있는 고깃배 선장이 챙겨 준 잡어를 도깨비장터에서 내다 팔고, 그 푼돈으로 잡곡 몇 줌을 팔아 들고 아기가 깨기 전에 집으로 가야 했기에 바쁘게 발걸음을 해야 했다.

해방전 경북 산골 마을에서 같이 자랐던 갑돌이와 갑순이었다. 해방 후 행복한 보금자리를 꿈꿨으나 곧 난리 통에 모든 것을 버리고 타지로 흘러가게 되었다. 마침내 멀리 남쪽 바닷가에 정착을 하면서 남자는 뱃일을 하게 된 것이다. 새로 배운 뱃 일이지만 사내는 식구를 돌보기 위해 뭐던 해야 했고, 서툴지만 열심히 했다. 얼마전에 새 식구도 생겼으니, 남들보다 더 많이 배를 탔다.

결국 바닷가 생활에 익숙해 지기도 전에 새댁은 생계를 홀로 이어가야 했다. 새벽에는 도깨비장터에서, 낮에는 이웃 동네 마늘밭 쫑매기, 등등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에 손품을 팔아야 겨우 두 식구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선창에 배가 묶이고 며칠을 보내면, 새댁은 바닷가 갯바위 틈을 뒤져 따개비를 땄다. 바닷가 출신의 아낙들은 물질을 해서 돈벌이도 하지만, 새댁은 물질을 못해 갯바위를 벗어 나지를 못하는 것이고, 겨우 딴 따개비는 상품성이 없어 내다 팔지도 못해 집에 가져가 죽을 쓀 때 넣었다. 그렇게 애기와 살았다. 그래도 동네 정이 있어서 틈틈이 동네 아낙들이 물질하고 돌아가는 길에 오두막에 몇 줌을 두고 가는 것으로 연명할 수 있었다.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세상 이치라지만 새댁은 딱히 바닷가 일을 모른다. 허드레 잡일이나 간단한 잡어 손질 외에는 산골 아낙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거의 매일 넋이 나간 채로 애를 부둥켜 안고 바다만 쳐다보고 우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고향에서는 어쩌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을 알려 준다고 했던가. 바닷가 갈매기들이 연일 시도때도 없이 떼지어 울며 오두막 위를 날아 갈 때, 아닌 줄 알면서도 행여나 하는 설레는 가슴으로 선창 쪽 모랫길을 바라보곤 했었다. 하지만, 이내 곧 자신의 생각이 얼척없다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흔들며 눈물만 삼킬 뿐이었다. 새댁은 그리움과 더불어 생활고에 하루하루 막막하기만 했다.

자주 가는 갯바위 넘어 가까운 암초 근처에 굴이 많이 채취되는데, 썰물 때는 물이 얕아서 물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창선댁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바구니를 챙겨 들고 나섰다.
그 곳은 절벽 아래라 항상 응달져 있고, 이끼 때문에 바위도 미끄러워 중심잡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애기를 등에 업고 작업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새벽 도깨비장을 다녀와 아침 잡곡죽으로 때운 아이를 다시 재우고, 애기 허리춤에 끈을 묶은 후 방문 손잡이에 한 쪽 끝을 묶어 고정해서, 아기가 깨어도 방안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잔잔한 파도마저도 갯바위를 치는 힘은 여린 새댁에게는 버거웠다. 발은 미끄러웠고, 흔들리는 몸은 작업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허기지고 어지러운 아기는 눈을 뜨지 못 한다. 멀리서 들려 오는 파도 소리는 잔잔하게 울리고 바다 바람은 문풍지를 흔들어 대며 소곤소곤 자장가를 부른다.

창선댁 말을 듣고 섬 그늘 아래 암초에 굴따러 간 지 삼일 째, 물질하던 동네 아낙들이 갯바위 틈에서 새댁을 발견하고는 곧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고, 모래 사장 언덕 너머 오두막으로 동네 사람들을 모아 몰려 갔다.

동네 사람들이 오두막에 불을 놓고 허공에 두손 빌며 애닯게 눈물 훔칠 때, 먼 발치에 선 시인은 쓰라린 가슴으로 어린 새댁을 보냈다.

며칠 뒤 늦은 밤에 모래 사장을 달리듯 걸어가는 새댁을 보았다는 동네 사람이 있었다. 빈바구니를 머리에 얹은 새댁이 불 탄 오두막으로 향하더라는 것이다. 엄마를 반기는 애기의 웃음 소리도 오두막 터 근처에서 들었다는 말도 있었다.

그날 밤에 바닷 바람을 타고 온 막내 어부의 자장가도 동네 사람들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


오후에 수술이 없어 한가한 틈에 본 유튜브 내용 중에 독일 합창단이 '섬집아이' 자장가를 부르는 것이 있었다.
아는 노래였지만 단순해 보이는 가사에 곡조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댓글에는 많은 사람들이 슬픈 느낌을 들게하는 노래라고 적어 놓았다. 그리고 이 자장가의 2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관어로 '괴담'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세간의 이야기는 믿을 것이 못된다.

......

더운 날씨에 할 일이 없어 정신 줄 놓으면 벼라별 잡생각이 떠오른다.
후세 ~ 고시레 퉤 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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