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단상들

251003 목포의 눈물

夢乭 2025. 10. 3. 22:34

오락가락하는 비 속에 목포로 가는 고속버스 안이다.
같이 근무하는 의사의 부친 부고 소식을 듣고 가는 중이다.

고인의 집이 목포지만 몇년전에 서울의 대학 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고 지내다 최근 암 재발과 전이가 되어 다시 병원을 방문하기 위해 목포와 서울을 오르내리게 되었다.

최근 멀리 통원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들이 근무하는 병원(서울 소재 정형외과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대학병원 처방 약이 있으니, 문제가 없고, 또 아들은 자식도리로 서울에 있는 동안 병원에 입원시켜 옆에서 돌보고 싶었을 것이다.

워낙 그 의사가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라, 나는 그의 가족이 입원해 있었는 줄도 모르다가, 극심한 통증을 조절해 주길 바라고 내게 협진 요청이 들어 와서 사정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본 환자의 표정은 다른 환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챠트 검토에도 특별히 활력징후에서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통증 분야에 있어서 따로 떼내어 관리하는 분야가 호스피스다.
통증관리 뿐 아니라 심리적 관리나 보호자의 교육까지...
그래서 의사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어 다분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경우 마취과가 통증제어를 위해 참여한다고 해도 역할이 15%를 넘지 않을 것이다.

통증 부위의 신경차단술과 환자 자가조절 진통장치를 처방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두였을 뿐이었다.

암성통증은 대량의 마약 투여도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일주일에 두번 신경차단술을 하기로 하고 계획을 세웠으나, 대학병원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이 아니라서 환자에게 어쩌면 치명적일 수도 있는 시술을 하기에는 부담이 커서 꺼려졌다.

두번째, 세번째 신경 차단술로 얼굴을 마주 할 때마다 환자의 얼굴 표정은 쓰러져 갔다.

암성통증이 얼마나 심한 통증인지 한 예를 들어 보자.
아주 오래전에 미국에서 벌어진 올림픽에서 레스링 선수 중에 출전 직전에 위암을 진단받은 한국 선수가 있었다.
우연히 그 선수에 대한 다큐를 TV에서 보게 되었다.
결국 치료를 거부하고 출전해서 메달을 땄으나, 귀국 후 암전이로 수술은 못하고 진통제 투약으로 관리하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몸은 야위어 가고, 하루는 병원 진료를 마치고 나오면서 통증이 극심해 지니,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옆에 있던 동생이 "업어주까?" 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업혔다.
그 모습을 본 옆의 엄마가
"저놈이 얼마나 자존심이 센 놈인데..."
얼마냐 견디기 힘들면 업혔겠냐...말이었다.

2일 아침에 출근하니 직원들이 소식을 전해줬다.
소문이 돌았는가.
아직 부고 소식은 오지 않았는데...

"오늘 수술은 많나? @선생 수술이 오후지? 오전 수술 중간중간에 오후 수술을 끼워 할테니, 다들 점심은 알아서 돌아가면서 먹고 서둘러 준비하자. 오늘 환자들 수술방으로 조금씩 빨리 내려라."

장례식장은 목포로 정해졌다.
부고장을 보니 출상이 4일이다.
3일은 공휴일이고 4일이 토요일인데, 일정상 @ 원장이 토요일 근무다.
목포에서 출상과 서울에서 근무가 겹치는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가 좀 특별하지 않은가.
병원에 2명의 정형외과 의사가 있으나, 1명은 형제들과 외국 여행으로 이미 일정이 정해졌서 토요일에는 국내에 없다.
평소같으면 대진의를 수소문 해 볼 수 있겠으나, 그것도 몇 주전에 알아 봤어야 했다.
갑자기 대진의를 구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연휴에 대진을 하겠다는 의사가 없을 것이다.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돌아 들리는 말에는,
"할 수없지. 안되면 올라와서 진료를 해야지요."

상주가 출상 아침에 서울 진료실에 앉아 있어야 한다.

병원 행정 직원들이 노력해서 대진의를 구하길 바랄 뿐이다.

극심한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비명 한번 없이 치료대로 기다시피 몸을 옮기시는 환자의 모습이 내 기억에 남아있다.
대단한 의지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상주가 직장 동료이고, 고인이 내 환자였던 관계만으로 문상을 가는 것이 아니다.

상주의 처지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선듯 자기 역할을 다 하겠다는 말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런 아들을 둔 고인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멀리 남도로 문상을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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